대멸종 부른 ‘우상향 성장 신화’, 인류세 시대에 버려야 할 것들
■ 인류세란?
지질시대는 ‘대-기-세-절’로 구분된다. 현재 우리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 메갈라야절’을 살고 있다. 홀로세는 1만1700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따뜻한 시기가 도래하며 문명이 발전한 시기다.
인류세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지구시스템 과학자 파울 크뤼천이 2000년대 초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온실가스 농도의 급증, 질소비료로 인한 토양 변화 등 인간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물리·화학적 시스템이 바뀌며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다.
인류세가 시작된 시점으로는 △신석기 혁명 △유럽의 아메리카 침입 △산업혁명 등 여러 주장이 있는데, 인류세실무그룹은 ‘대가속기’(The Great Acceleration)가 시작한 1950년대로 보고 있다.
대가속기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기반을 둔 소비 자본주의가 확산한 시대다. 1950년대부터 이산화탄소 농도 등 12개 지구 시스템 지표와 세계 인구 등 12개 사회·경제적 지표가 폭증했다.
지금까지 인간은 ‘우상향 곡선’에 서 있었다. 인간의 모든 이야기와 대안이 오른쪽 위 방향을 향했다.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면, 자유와 정의가 증진되고 결국에는 이데아(이상향)에 이를 것이라는 관점 같은 것 말이다.
‘인류세’에 들어 지구 시스템은 교란되어 기상재난이 잦아지고, ‘제6의 대멸종’이라고 이를 정도로 수많은 동·식물이 사라지고 있다.
줄리아 토머스 미국 노르트담대 교수(환경사)는 역사 분야에서 인류세 연구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지난 28일부터 1일까지 대전 카이스트와 기초과학연구원에서 열린 ‘동아시아환경사학회’에 참석차 한국에 온 토머스 교수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인류가 처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이런 우상향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장에 근거해 해결하겠다는 기존의 서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펴낸 책 <조작된 지구>(Altered Earth)의 부제가 ‘인류세 바로잡기’(getting the Anthropocene right)다. 인류세의 문제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한다는 건가?
“인류세를 바로잡기 위해선 세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과학에 기반을 둬 인류세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것, 과학자들이 인류세로 정의한 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지질학자도 아니고 지구 시스템을 연구하지도 않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두번째는?
“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지금까지의 정치는 유토피아(를 만드는 것)에 기반을 뒀다. 정의와 자유가 넘치고 부가 넘치는 세상을 그려왔다. 자유민주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사회주의자 모두 똑같았다. 경제 성장이 좋은 삶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의 약속은 성장에 기반을 둔 헛된 믿음이다. 우리는 이미 ‘행성적 경계’(planetary boundary)를 지나치고 있다. 아니, 많은 분야에서 이미 경계선을 훌쩍 넘었다. 우리의 희망은 성장에 근거한 자유와 정의에 있지 않다. 좀 더 큰 형평성에 기반을 둔 친절 그리고 회복력에 있다. 역사를 뒤돌아보고 재조정해야 한다. 익숙했던 역사의 서사를 바꿔야 한다.”
행성적 경계는 지구 시스템을 구성하는 9개 핵심 요소를 선정해, 각 요소별로 지구 환경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한 한계치를 제시한 스웨덴 출신 과학자 요한 록스트룀의 개념이다. 이미 지구는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손실 △토지 개간 △질소∙인 축적 등 4개 요소의 한계치를 돌파했다.
■ ‘인류세’→‘자본세’로 이름 바꾸는 것엔 회의적
—역사의 서사를 바꿔야 한다?
“그렇다. 역사의 서사든, 과학의 서사든 마찬가지다. 우리는 역사를 돌아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문제에 대처했는지 알아야 하고, 성장에 근거해 해결했다는 기존의 서사를 버려야 한다. 앞을 보는 사고(forward thinking)가 아니라 뒤를 보는 사고(backward thinking)가 필요하다.”
—최근 인류세에 대한 사회과학적 논의도 분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으로만 볼 게 아니라 인간과 나머지 지구 생명망의 관계를 엮는 방식으로 이해하자며, 인류세라는 용어 대신 ‘자본세’를 쓰자는 주장도 있다. 포스트휴머니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는 솔루세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밖에 고독세, 학살세 등 다양한 이름도 제안되고 있는데?
“나는 인류세의 이름을 바꿔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한다. 인류세는 지구의 물리∙화학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과학적 개념이다. 자본세를 들어보자. 자본세는 기업의 이윤 추구에 따른 책임을 강조하는데, 마르크스주의나 중국 공산주의 등 근대 정치학은 기술개발과 성장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한 시도는 인류세의 일부를 설명할 뿐 인류 활동의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인류세의 정의를 과학에 맡겨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인류세는 지구시스템 과학에서 나온 개념이다. 1950년대에서 2020년대까지 우리는 지구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인간은 수로를 바꾸고, 우리가 내뿜은 온실가스 농도가 최고다. 내가 사는 시카고는 캐나다 산불로 어제 역대 최악의 공기 질을 기록했다. 과학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준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이 논의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데 기여할 수 있다.”
■ “기후위기 기술로 해결하겠다는 관점은 위험”
줄리아 토머스는 인류세를 단지 인류의 분발과 각성을 촉구하는 ‘이벤트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 인류세는 과학적으로 실재하며, 우리는 인류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비관론자인 건 아니다. 인류세를 극복할 수는 없지만 헤쳐나갈 수는 있다고 표현한다.
—인류세의 위기를 기후위기로 여기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 정한 ‘1.5도’ 목표를 달성하면 홀로세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재생에너지에도 니켈, 코발트, 리튬 등 막대한 자연자원 채굴이 필요하다. 기후위기를 기술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관점에 갇히는 건 매우 위험하다. 기업이야 돈을 벌 수 있겠지만, 그들이야말로 생물다양성을 훼손하고 지구를 파괴한 이들 아닌가. 에너지 사용과 성장에 기반을 둔 해결책으로는 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다.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보다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대안이 필요하다.”
대전/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전 부처의 검찰화, 윤 대통령의 ‘사정 만능 통치’
- ‘수사기관과 한몸’ 전방위 사정몰이 중심에 선 ‘유병호 감사원’
- ‘킬러 문항’ 잡으면 끝? 의대·서울대 반수생 몰린 사교육 ‘호재’
- 민주 “쿠데타”-국힘 “마약 도취”…정치권 ‘막말 인플레이션’
- 일 오염수 ‘합격증’ 나온다…방류 최종 절차 마무리 수순
- 헌재로 달려가는 n번방 가해자들…‘재판지연 전략’으로 이용하나
- 교통비 월 최대 6만7천원 아낀다…오늘부터 ‘알뜰교통카드’ 발급
- 남자 며느리, 뭐 어때…가족이 망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 “경례 왜 안 해” 병사 뺨 8번 때린 대령…유·무죄 엇갈린 이유는?
- 이르면 내년 ‘인류세’ 지정…플루토늄·탄소·닭뼈가 새 지질시대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