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 ‘인류세’ 지정…새 지질시대 증거 후보는 플루토늄

남종영 2023. 7. 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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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이먼 터너 인류세실무그룹 사무국장
인류 활동으로 지구 시스템 변화
대표지층 11일 최종후보지 선정
지난달 28일 사이먼 터너 인류세실무그룹 사무국장(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선임연구원)이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인류세의 공인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인류세란?

지질시대는 ‘대-기-세-절’로 구분된다. 현재 우리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 메갈라야절’을 살고 있다. 홀로세는 1만1700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따뜻한 시기가 도래하며 문명이 발전한 시기다.

인류세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지구시스템 과학자 파울 크뤼천이 2000년대 초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온실가스 농도의 급증, 질소비료로 인한 토양 변화 등 인간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물리·화학적 시스템이 바뀌며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다.

인류세가 시작된 시점으로는 △신석기 혁명 △유럽의 아메리카 침입 △산업혁명 등 여러 주장이 있는데, 인류세실무그룹은 ‘대가속기’(The Great Acceleration)가 시작한 1950년대로 보고 있다.

대가속기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기반을 둔 소비 자본주의가 확산한 시대다. 1950년대부터 이산화탄소 농도 등 12개 지구 시스템 지표와 세계 인구 등 12개 사회·경제적 지표가 폭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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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시대에 들어섰음을 입증할 과학적 증거가 오는 11일 발표된다. 인류의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 지층’ 격인 ‘국제표준층서구역’(GSSP·황금못) 최종 후보지 선정을 시작으로, 인류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1만1700년 동안 이어져온 ‘홀로세’(Holocene)를 끝내고 새로운 지질시대를 살게 될 전망이다.

사이먼 터너 인류세실무그룹(AWG) 사무국장(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28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인류세의 국제표준층서구역) 후보지 12곳에 대한 심사를 최근 마쳤다”며 “(최종 선정된 곳은) 아주 강력한 지질학적 증거와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질학계는 인류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물리·화학적 시스템이 중대한 변화를 겪어 홀로세의 안정적인 상태를 벗어났다고 보고, 2009년 국제지질과학연맹(IUGS) 국제층서위원회(ICS) 제4기 층서위원회(SQS) 산하에 인류세실무그룹을 결성해 인류세를 새로운 공식 지질시대로 등재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검토해왔다.

이 그룹은 2019년 인류세의 시작 시점을 1950년대로 결정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 인류세가 시작됐음을 보여줄 대표 지층 격인 국제표준층서구역 후보지로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와 남극반도의 빙하 코어( 얼음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포함된 공기), 일본 벳푸만의 해양 퇴적층 등 12곳을 선정했다. 지난해 12월 이 가운데 3곳을 제외한 데 이어, 4곳을 선정해 하나씩 제외하는 방식으로 최종 지역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는 오는 11일 인류세의 ‘표준화석’이라 할 수 있는 주요 마커(표지) 및 그간의 활동 결과와 함께 최종 발표된다. 인류세 첫 ‘절’의 이름을 국제표준층서구역에서 따오는 만큼, 후보지를 낸 각국의 과학자들도 치열하게 경쟁했다고 한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는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가 꼽히고 있다. 만약 이곳이 국제표준층서구역으로 최종 선정되면, 앞으로 인류는 ‘신생대 제4기 인류세 크로퍼드절’에 살게 되는 것이다.

‘황금못’이라고 불리는 국제표준층서구역(GSSP)의 유력한 후보지로 꼽히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크로퍼드 호수. 수심은 깊은 데 견줘 면적이 작아 퇴적층이 잘 보존돼 있다. 콘서베이션 홀턴 제공

크로퍼드 호수가 유력 후보지로 부상한 까닭은 수심은 깊은데 면적이 작고 동식물의 간섭이 거의 없어, 각종 물질이 호수 바닥 퇴적층에 깔끔하게 쌓여 보존됐기 때문이다. 또 이곳에선 750년 전 이로쿼이족의 옥수수 경작 흔적은 물론, 원자폭탄 사용(1945년)과 핵실험으로 인해 1950년대 초반 높은 농도로 발견됐던 ‘플루토늄’과 화석연료 발전소에서만 배출되는 ‘구형탄소입자’(SCP) 등도 발견된다.

특히 플루토늄과 구형탄소입자는 표준화석처럼 인류세를 대표하는 주요 마커 후보로 유력하다. 또 인간이 만든 플라스틱이나 전세계에서 널리 사육·소비되는 닭의 뼈도 마커 후보로 거론돼왔는데, 터너 사무국장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발견 양상이 달라, 지역적인 마커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질학계는 11일 최종 결과를 발표한 뒤, 올해 여름 열릴 제4기 층서위원회와 내년 국제층서위원회에서 차례로 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두 기구에서 60% 이상 찬성으로 통과되면,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지질학총회(IGS) 비준과 동시에 인류는 새로운 지질시대에서 살게 된다.

학계에서는 인류세가 이미 지질학계를 넘어 보편적인 개념이 됐다고 보고, 무난히 새 지질시대로 공인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터너 사무국장은 “인류세 연구는 표준적인 지질학 방법론을 따랐다. 지구가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에 들어섰다는 강력한 논리와 증거가 있다”며 향후 투표 결과를 낙관했다.

석탄 등 화력발전소에서 고온으로 화석연료를 가열할 경우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구형탄소입자(SCP). 사진은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에서 검출된 입자다. 사이언스

남은 것은 국제표준층서구역과 주요 마커를 통해 인류세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다. 지난달 28일부터 1일까지 대전 카이스트와 기초과학연구원에서 열린 동아시아환경사학회의 ‘다중의 위기와 아시아의 인류세’ 콘퍼런스에선 터너 사무국장을 비롯해 역사학자 줄리아 토머스(미국 노터데임대 교수)와 과학사학자 위르겐 렌(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지질학연구소) 등 인류세 연구 선두에 선 학자들이 참석해 이와 관련해 뜨거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박범순 동아시아환경사학회장(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장)은 “인류세의 시점을 먼저 정한 뒤 인류세의 마커를 선정한 방식에 대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었다는 지적이 있다”며 “앞으로 남은 투표에서 이 부분이 논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인류세 주요 마커 선정과 관련해 “핵실험의 여파로 플루토늄은 전 지구적으로 발견되지만, (주로) 1950년대 초반에 예리한 흔적을 남긴 반면, 대가속기의 시대적 특성을 대표하는 구형탄소입자는 플루토늄보다 지역·시기적으로 흩어져 발견되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전/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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