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의 서사는 이념대결의 승리가 아닌 관심과 환대” [심층기획-한·미동맹 70주년]

이우중 2023. 7. 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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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한·미동맹의 증인들 미국 속 한국인
‘한인 공동체’ 다큐 제작 전후석 감독
6·25전쟁이 낳은 입양아·국제결혼여성
LA폭동 때 터전 잃고도 美 발전 기여
IMF 등 고국 위기 땐 ‘금모으기’ 동참
양국 동맹 근간, 반공주의 그쳐선 안돼
이주민·난민 등은 차별 아닌 환대 대상
차기작에 ‘삼중 정체성’ 조선족 등 구상
“중국인·한민족·남북 갈림길 흥미로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서사가 아닌, 타인에 대한 환대 정신을 몸소 체험하고 실현하는 이민자들과 디아스포라를 통해 한·미동맹 70주년의 서사에 대해 곱씹고 싶었습니다.”

재미교포이면서 미국변호사인 전후석 감독은 1일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디아스포라적 관점을 설명하며 ‘타인에 대한 관심과 환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인 디아스포라에 천착해 온 전후석 감독이 지난해 다큐멘터리 영화 ‘초선’(CHOSEN) 제작 후 한국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 감독은 쿠바의 한인 사회를 다룬 ‘헤로니모’를 시작으로 2020년 미국 연방하원 선거에 도전한 한인 5명의 이야기를 다룬 ‘초선’(CHOSEN)을 제작하는 등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탐구에 주력하는 작품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그는 ‘처음 뽑힘’(初選)이라는 뜻의 한국어, ‘당선된’(Chosen)이라는 의미의 영어, 한·미가 처음 조약을 맺을 때 미 공식 문건에 담긴 국호 ‘조선’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아 초선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디아스포라는 원래 이산(離散)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며 정체성을 지켜 나가던 이산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최근에는 고국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교포는 물론이고 이주노동자, 해외입양자 등이 모두 디아스포라로 묶일 수 있는 셈이다.

전 감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한국도서관협회, 미국 의회도서관, 로스앤젤레스(LA) 공공도서관과 함께 지난달 26일과 29일 미 워싱턴과 LA에서 각각 진행한 인문학 강연에서 ‘한·미 관계 강화를 위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힘과 서사’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 행사에는 의회도서관의 참전용사구술사업(VHP)에 참여하는 참전용사와 가족, 미국의 한국학 전공자 등이 초청됐다.
전후석 감독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회도서관에서 ‘한·미 관계 강화를 위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힘과 서사’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전후석 감독 제공
그는 “제가 생각해 본 한·미동맹의 서사는 인류애와 보편성에 기반한 디아스포라의 존재 혹은 사유 방식”이라며 “그것은 반공주의로 대변되는 이념 대결에서의 승리 혹은 특정인에 대한 영웅화와는 거리가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6·25전쟁으로 생겨난 30만명 이상의 해외 입양아, 미군과 결혼해 미국에 정착해 모은 돈을 모국 가족에게 송금했던 ‘전쟁 신부’라 불린 국제결혼여성들과 그들의 혼혈 자녀들을 떠올려 본다”며 “1992년 LA폭동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지만 성실함과 희생정신으로 미국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며 동시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조국이 위급할 때 자신들의 금을 보냈던, 이제는 200만명이 넘는 재미 한인들의 존재가 있다”고 말했다.

전 감독은 “한·미동맹의 근간이 됐던 6·25전쟁에서 미군의 역할, 미국의 경제·안보적 지원에 힘입어 압도적인 성장을 지속해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세계적 지위에 초점을 둔 서사가 종종 등장한다”며 “그런 서사가 사실에 기반한다는 데에 이견이 없고, 분명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괄목할 만한 발전”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2023년 현재 한·미동맹의 근간이 오로지 반공주의나 그와 비슷한 어떤 것에 그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 감독은 “디아스포라적 시각에서 이주민, 경계인, 변방인, 이민자, 난민 등은 공격과 차별의 대상이 아닌 환대의 대상”이라며 “그들의 존재와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사회의 성숙도와 정책·제도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 동포나 외국인 노동자를 낮게 바라보는 한국 사회와 아시안 혐오 범죄가 아직도 버젓이 일어나는 미국 모두 여러모로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미국변호사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서 일하던 전 감독의 운명은 2015년 떠난 쿠바 여행에서 바뀌었다. 우연히 만난 한인 3세 파트리시아 임을 통해 쿠바혁명의 주역이자 쿠바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헤로니모 임(한국명 임은조)을 접하며 디아스포라에 천착하게 됐다. ‘헤로니모’는 헤로니모 임과 그의 부친인 독립운동가 임천택 선생의 흔적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쿠바와 미국의 이야기를 그린 전 감독의 시선은 이제 좀 더 한국과 가까운 곳으로 향하는 듯하다. 그는 차기작을 묻는 질문에 “북한·재중 동포 등이 흥미롭다”고 답했다. 그는 저서 ‘당신의 수식어’를 통해 그가 연변에서 만난 조선족들이 스스로를 사과도 배도 아닌 ‘사과배’로 칭한 것을 소개하며 중국인이면서도 한민족으로, 동시에 남북한 사이에서도 선택을 강요받는 삼중 정체성을 지닌 조선족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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