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100조 시대인데... 거래소가 밀어붙인 상품은 이틀간 4억 팔려
대부분 운용사 여력 안 돼 삼성·미래만 해당 ETF 출시
거래소 등쌀에 출시는 했는데…상장 초기 성적표 초라
국내 상장지수펀드(ETF)의 규모가 100조원을 돌파하며 잔치 분위기를 이어가는 가운데, 이 ETF는 축제 속 침묵을 지키고 있다.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 ETF의 얘기다. 한국거래소가 미온적인 자산운용사를 독려해 가까스로 상품 출시까진 이뤄냈지만, 투자자들은 해당 상품에 대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상장한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코스닥 글로벌 ETF는 이틀간 개인 투자자에게 차례로 3억2273만원, 7164만원어치 팔렸다. 이는 직전에 양사가 출시한 ETF인 KODEX 테슬라밸류체인FactSet(17억1372만원)과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45억4538만원)의 판매량을 크게 하회하는 수준이다.
해당 ETF는 지난해 11월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 기업 제도가 도입된 뒤 처음으로 출시된 연계 상품이다.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란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기업 중 우량한 기업만 솎아낸 것으로 에코프로비엠, 셀트리온헬스케어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으로 구성됐다.
코스닥 종목인 탓에 관련 상품을 출시해도 흥행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운용업계 공통 의견이었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종목을 위주로 ETF를 내도 성공할까 말까인 상황에서 그보다 시장 규모가 작은 코스닥 종목은 ETF를 만드는 데 드는 품에 비해 수익을 내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에 한국거래소에서는 자산운용사 임원을 만나 해당 제도를 설명하고 이들의 얘기를 청취했다. 그 결과 한국거래소는 자산운용사가 코스닥 글로벌 ETF를 운용하기 편하도록 지수를 설계했다. 코스닥 글로벌 지수 산출 시 구성 종목과 관련해 코스닥 글로벌 기업 정기 지정일 이후 4거래일이 지난 다음 거래일에 정기 지정을 반영하는 게 골자다.
이 외에도 특정 종목의 비율이 전체 종목 중 25%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캡을 씌우고 구성 종목 비중 산출 시 시가총액이 아닌 유동주식비율을 썼다. 또 지수 산출 주기를 10초에서 1초로 줄였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코스닥 글로벌 세그먼트 제도가 도입된 지 7개월 만에 ETF가 시장에 나온 것이다.
오랜 산통 끝에 모습을 드러낸 ETF지만 시장의 반응은 없다시피 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출시 이벤트를 했는데도 첫날에 2억원 남짓이 팔렸다는 건 흥행에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벤트에 따라 거래가 일어날 수 있어 순수하게 ETF만을 보고 투자한 투자자는 얼마나 될지 판단하기 힘들다”고 했다. 실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코스닥 글로벌 ETF 거래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문화상품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편 운용사가 설정한 ETF 순자산만 봐도 해당 ETF가 업계에서 얼마나 무리였는지 유추할 수 있다. 자산운용사는 ETF를 출시할 때 유동성공급자(LP)인 증권사와 계약을 맺는다. LP는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해당 ETF의 종목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시장에서 구하지 못하면 통상 계약을 맺은 운용사에서 빌린다. 이때의 수수료가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즉 순자산이란 운용사가 해당 금액만큼 ETF를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코스닥 글로벌 ETF의 순자산은 삼성자산운용 500억원, 미래에셋자산운용 100억원이다. ETF 상폐 기준이 순자산 50억원 미만인 점을 고려할 때 100억원은 업계 최저 순자산 수준이다. 업계 2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조차 100억원만 설정할 정도로 해당 ETF를 운용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수백 개가 넘는 자산운용사 중에서 오로지 두 곳만 코스닥 글로벌 ETF를 출시한 배경이기도 하다.
한국거래소 등쌀에 못 이겨 출시한 ETF의 첫날 성적이 시원치 않지만 일각에서는 아직 판단하긴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현재 시장 상황상 처음 상장했다고 돈이 들어오기가 쉽진 않다”며 “이후 해당 ETF의 추가 설정 여부를 봐야 흥행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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