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만 하는 줄 알았는데”... 저개발국 투자·운영까지 나선 국내 건설사들

이미호 기자 2023. 7. 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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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벨로퍼 ‘시험대’ 된 PPP 수주
장점 많지만 환율 리스크 헤징 ‘관건’
향후 SMR 사업까지 확대... “공기업 예타 기준 완화해야”

저개발국은 도로와 대교, 철도 등 대규모 인프라 토목공사에 대한 수요가 높다. 하지만 재정 상황은 열악하다. 정부가 민간 건설사에 발주를 하고 싶어도 공사비를 당장 지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민간 건설사가 지분 투자를 직접 하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일으켜 자금도 끌어오고, 공사도 수행한다면? 발주처는 공사비 대신 건설사에 당분간 운영권을 넘기고 향후 벌어들일 수익을 지급한다. 다만 약정한 기간이 지나면 소유권과 운영권을 해당 정부가 다시 가져오게 된다.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 민관협력투자개발(PPP)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단순 도급을 넘어 지분 투자는 물론 향후 운영 수익까지 확보하는 ‘선진국형 사업 모델’이 국내 건설 업계에서 하나의 수주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SK에코플랜트 제공

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개통한 카자흐스탄 ‘알마티 순환도로’는 SK에코플랜트가 ‘짓고(Build), 운영하고(Operate), 향후 정부에 이관(Transfer)’하는 BOT방식의 민관협력사업(PPP) 방식으로 진행됐다. PPP사업은 공적 자금과 민간재원이 함께 투입되는 개발협력 사업이다. 민간은 도로 등의 공공 인프라 투자·건설·유지·보수 등을 맡아 수익을 얻고, 정부는 세금 감면과 일부 재정 지원을 해주는 상생협력모델로 꼽힌다.

발주처인 카자흐스탄 정부는 자국 내 통행량이 급증하면서 고속도로가 필요했지만 재정이 여의치 않았다. 이에 SK에코플랜트가 지분 투자를 통해 PF 형태로 추진하고, 완공 후 13년간 운영 수익을 가져가는 것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기로 했다. 이후 소유권과 운영권은 카자흐스탄 정부에 넘겨주는 방식이다. SK에코플랜트 관계자는 “PPP는 PF를 통해 론(대출)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 유치를 통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인데 당사가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라며 “지분 참여를 통해 고정적·안정적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SK에코플랜트와 DL이앤씨가 합작한 ‘튀르키예 차나칼레 대교’ 역시 PPP 방식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다. 해외에서도 시공 기술과 노하우 뿐만 아니라 금융조달과 운영면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GS건설은 호주 맬버른 북동 지역(North East Link) 도로 공사와 브리즈번 인랜드 철도 공사를 PPP방식으로 수주해 공사 중이다. GS건설 관계자는 “단순 도급 수주의 고질적 문제점인 ‘저가 입찰경쟁’도 피할 수 있고, 사업을 직접 발굴하고 개발하는 디벨로퍼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현대건설도 작년 8월 베트남 하남성 스마트시티 건설을 PPP방식으로 진행키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처럼 PPP방식은 저개발국의 발전을 돕는다는 취지에서 ‘좋은 모델’이자, ‘디벨로퍼’로서 국내 건설사들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이른바 ‘환율 리스크’ 관리를 못할 경우, 자칫 독(毒)이 될 수도 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튀르키예 공사수익금을 리라로 받는다면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면서 “달러 베이스(기반)로 받느냐 유로 베이스로 받느냐, 즉 환율 리스크를 헤징(hedging)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향후 PPP사업이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공기업(공공기관)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카자흐스탄 알마니 도로공사에는 SK에코플랜트 뿐만 아니라 한국도로공사가 함께 참여했다.

특히 PPP방식이 저개발국 토목공사 뿐만 아니라 앞으로 소형원전사업(SMR) 등에서도 적극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700조 규모의 네옴시티 사업 등 중동 개발 건을 앞두고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상황이다.

공공기관 예타는 무분별한 해외자원개발 사업 추진을 막기 위해 지난 2011년 도입됐다. 현재 공기업이 500억원 이상 해외투자를 하려면 예타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예타에 평균 7.5개월이 소요돼 투자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기획재정부가 2020년 공기업·준정부기관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운용지침을 개정했지만 인력 부족과 시스템 미비로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투자사업 중 시급성을 요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예타를 면제하는 내용의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발의(구자근 국민의힘 의원)됐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향후 SMR사업도 PPP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결국 한국전력 등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며 “일례로 원전 폐기물 처리 사업만 해도 민간 건설사의 노하우만으로는 부족하고 한국수력원자력 등과 협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타 조건을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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