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도 31년 걸린 연금개혁…정권 교체? 상관없이 해야"

김대연 2023. 7. 3.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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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조 요시카즈 게이오대 상학부 교수 인터뷰
22일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연사 참석
한·일 연금개혁 비교하며 '정치권 의지' 강조
"저축 아닌 보험…국민들의 인식 전환 중요"

[이데일리 김대연 권효중 기자] “일본도 연금제도를 개혁하는 데 31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당시에 일본 국민들의 반발도 컸죠. 그러나 일본은 보험료 상한선을 제시해 국민들을 설득했고 정권도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일관적으로 강한 의지를 갖고 실현시켰습니다.”

일본 연금개혁의 대가로 손꼽히는 겐조 요시카즈 게이오대 상학부 교수가 지난달 2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연금개혁이 오랜 기간 걸리는 과정인 만큼 정권교체가 결코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겐조 교수는 일본이 세계적으로 연금개혁에 성공한 나라로 평가받는 것은 보험료율 인상 상한선을 사전에 국민들과 약속하고 지켰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겐조 요시카즈 게이오대학교 상학부 교수가 2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국민 반대 부딪혀도 정치권이 실현해야”

D-32년. 지금 이 상태로 32년이 흐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완전히 고갈된다. 모두가 연금개혁의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총대 메고 나서는 이 없이 그저 ‘폭탄 돌리기’에 급급하다. 우리나라의 현행 보험료율은 1998년 1차 연금개혁 이후 25년째 9%로 멈춰 있는 상태다.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해지면서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가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혀도 정치권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겐조 교수는 연금개혁에 성공하려면 정치가들이 여론 간보기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처럼 한국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 연금개혁을 제대로 하는 정치가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일본과는 구조가 다르지만 국민이 반대한다고 해도 정치인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목표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책임지고 시행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내 거센 반대 여론를 무릅쓰고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2년 올린 64세로 상향 조정하는 개혁안을 밀어붙였다. 일본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연금개혁을 강행하며 승부수를 던졌고 이를 기점으로 지난 2004년 13.58%였던 보험료율을 매년 0.354%포인트씩 인상해 2017년 18.3%로 올렸다. 무려 13년에 걸친 인상이었지만 정치권의 과감한 추진력 덕분에 가능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겐조 교수는 “일본은 한국과 달리 관료와 정치가 분리된 구조라서 상황이 다르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정권교체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변수라서 정치 체제랑 관계없는 독립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며 “연금개혁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시간이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거시경제 슬라이드 추천…국민과 약속”

그렇다면 일본이 31년에 걸친 연금개혁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나라로 치면 대통령이 6번 바뀔 동안 연금개혁을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겐조 교수는 ‘거시경제 슬라이드’라는 연금액 자동 안정화 장치를 도입해 국민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답했다.

거시경제 슬라이드는 인구와 노동시장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반영해 연금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시스템이다. 후생연금 가입자 수가 줄어들고 기대여명이 증가할수록 연금 인상률을 낮춰 지출을 억제하는 구조다. 일본이 보험료율 상한선을 먼저 공표했기 때문에 매년 조금씩 장기간에 걸쳐 인상함으로써 국민 부담을 낮출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는 “우선 보험료율 상한선을 고정하고 이후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서 공제연금을 후생(厚生)연금으로 통합하는 등 세심한 작업을 통해 보험료 인상 속도 등을 조절할 수 있다”며 “경제가 안 좋고 불확실할수록 국민들은 보험료율이 어디까지 인상되는가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거쳐 미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겐조 교수는 국민 개개인의 노후 대비를 위해 보험율 인상은 시급한 문제임을 짚었다. 그는 “자동차 보험을 들었다가 사고가 안 나서 돈을 못 받는다고 ‘사고가 안 나서 아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연금은 안정감을 위해 필요한 것이고 모두가 연금이 ‘저축이 아닌 보험’이라는 인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겐조 요시카즈 게이오대학교 상학부 교수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에서 ‘연금, 대전환이 필요한 순간’이란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연금문제 고민하는 韓 청년·정치가 감동”

특히 겐조 교수는 연금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한국 청년들과 정치인의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날 ‘인구절벽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로’를 주제로 열린 제14회 이데일리 전략포럼의 연사로 참여해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대담을 나눈 바 있다. 겐조 교수와 안 의원은 한·일 연금개혁 상황을 공유하며 연금 통합 및 투명한 정보 공개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겐조 교수는 “한국의 국회의원까지 포럼에 나와서 대담을 하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며 “안 의원은 모두의 장래를 위해 연금개혁을 하자고 했는데 사실상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은 국민의 박수를 받기 어려운 일인 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금은 개인의 장래를 위한 일인 만큼 모두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문제이므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안 의원도 “2088년 국민연금의 누적적자를 단순 덧셈해보면 1경7000조원인데 적자에 ‘경’이 들어가는 경우는 처음 봤다”며 “모든 개혁은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숫자를 비밀로 하지 않고 정확하게 얘기해야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포럼을 마치고 겐조 교수는 이데일리와 인터뷰 내내 “청년들이 행사장 자리를 빽빽하게 채우고 경청하는 등 참석자 모두 연금개혁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개혁은 험난한 길을 갈 수밖에 없어서 젊은 세대가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연금급여도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인지하고 연금개혁에 지지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대연 (bigkit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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