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골 고맙다" 12발 총격에 선수 사망…"축구계 최악 비극"[뉴스속오늘]

이은 기자 2023. 7. 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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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콜롬비아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왼쪽)이 1994년 6월 22일(현지시간) 미국 파사데나 로즈볼에서 열린 1994년 미국 월드컵 1라운드 미국 전에서 하크스의 슛을 막으려다 자책골을 넣고 있는 모습./AFPBBNews=뉴스1

1994년 7월 3일. 미국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를 살해한 범인이 체포됐다.

콜롬비아 태생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남아메리카에서 손꼽히는 수비수로,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콜롬비아 국가대표로 연이어 출전했다.

'우승 후보' 꼽히던 콜롬비아…당시 최약체 미국에 '자책골' 실수
당시 콜롬비아는 강력한 월드컵 우승 후보로 주목 받았다. 콜롬비아는 남미 지역 예선에서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가 뛰던 아르헨티나를 5대 0으로 꺾는 등 압도적인 경기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콜롬비아는 정작 본선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A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는 루마니아에 1대 3으로 패했고, 6월23일 열린 2차전에서 개최국이자 당시 A조 최약체로 꼽히던 미국을 만났다.

콜롬비아에게 미국과의 2차전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그러나 결국 승리는 미국에게 돌아갔다.

경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건 전반 34분. 에스코바르가 미국 하크스가 크로스로 올린 공을 차단하려다 자책골을 넣으면서다. 이어 미국은 기세를 몰아 쐐기골을 넣었고, 콜롬비아는 벌어진 두 골 차를 따라잡으려 애써봤지만 1골만을 성공시키며 결국 1대 2로 패하고 말았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혔던 콜롬비아는 1승2패 조 최하위에 그치며 16강에 진출하지 못했고,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맛봐야했다.

우승 기대→조별리그 탈락에 폭발한 콜롬비아…선수 살해 위협까지
월드컵 첫 우승의 기대에 부풀었던 콜롬비아 국민들은 크게 실망했고, 이는 분노로 뒤바뀌었다. 특히 자책골을 넣은 에스코바르에겐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콜롬비아의 악명 높은 마약 조직 '메데인카르텔'은 "선수들이 귀국하는 대로 살해하겠다"고 공개 협박을 하고 나섰고, 위협은 극에 달했다. 선수단은 귀국을 주저했고, 프란시스코 마투라나 당시 콜롬비아 대표팀 감독은 에콰도르로 피신하기도 했다.

1994년 6월 23일 열린 미국 월드컵 A조 조별경기 2차전 콜롬비아 대 미국 전에서 자책골을 넣었다 살해당한 콜롬비아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AFPBBNews=뉴스1


그러나 미국의 친척 집에 가려 했던 에스코바르는 죄책감에 홀로 귀국했고, 이는 그의 마지막 선택이 됐다.

죽기 바로 전날 "자살골은 이상한 경험이었다. 내 인생이 끝나지 않는 한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이라고 했던 에스코바르의 말은 유언이 됐다.

에스코바르는 자책골을 넣은 지 10일 만인 1994년 7월 2일. 여자친구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메데인의 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가 6발의 총탄을 맞고 세상을 떠났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타고 있던 에스코바르 앞에 괴한 세 명이 나타났고, 그 중 두 명이 38구경 권총을 꺼내들고 그를 향해 12발을 쐈다. 당시 함께 있던 여자친구는 "괴한이 에스코바르에게 '자책골 고맙다'며 시비를 걸었고, 한 발씩 쏠 때마다 '골!'이라고 외쳤다"고 증언했다.

에스코바르에게 총을 쏜 일행은 픽업트럭을 타고 달아났고, 총탄 6발을 맞은 에스코바르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45분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27세의 젊은 나이였다.

'자책골' 탓하며 총탄 12발 쏜 범인…하루 만에 잡혀
에스코바르를 살해한 범인은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경호원인 움베르토 무뇨스 카스트로로 밝혀졌다. 그는 에스코바르를 살해한 다음날인 7월 3일 체포됐다.

에스코바르의 사망 후 당대 콜롬비아 최고의 스타였던 카를로스 발데라마와 파우스티노 아스프리야 등도 생명에 위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은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 경호원 출신인 움베르토 카스트로 무뇨스였다. 그는 처음엔 술 한잔 하고 나오는 길에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어 싸우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으나 갱단과의 연관성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움베르토 카스트로 무뇨스가 갱단의 리더 산티아고 갈론의 운전사로 일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갈론은 경기에 큰 돈을 걸었다가 이를 날리자 크게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살인의 배후로 갈론이 지목됐지만 검찰은 용의자로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카스트로를 범인으로 특정했고, 1995년 법원은 그에게 43년형을 선고했다. 이후 26년으로 감형됐고, 복역 10년 만인 2005년 모범수로 가석방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축구계 가장 비극적인 사건…'자살골'→'자책골' 변화 이끌어
2014년 7월 2일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주 메데인에서 고(故) 콜롬비아 축구 선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의 추도식이 열린 모습./AFPBBNews=뉴스1

에스코바르의 안타까운 죽음에 축구계는 물론 전세계는 충격에 빠졌고,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콜롬비아 언론은 '나라 전체의 자살골' '경악, 광란의 범죄'라고 대서특필했고,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제프 블라터 회장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슬픈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에스코바르의 장례식에는 12만명이 넘는 콜롬비아 국민들이 참석했고, 사건 직후 치러진 미국 월드컵 독일 대 벨기에전과 스페인 대 스위스전(16강전)에선 경기 개시 전에 그를 추모하는 묵념이 행해졌다.

에스코바르 피살 사건은 지금까지도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선수에게 살해 위협이 쏟아질 때마다 회자돼 왔다. 지금도 매년 기일이 되면 그의 고향 메데인에서는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또한 이 사건은 축구 용어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상대편이 아닌 자기편의 골문에 공을 잘못 넣는 일'이라는 뜻으로 흔히 쓰던 '자살골'은 '자책골'이라는 표현으로 바뀌게 됐다.

이은 기자 iame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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