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에 진심 尹대통령…이례적 R&D 예산 재검토 지시, 왜?
尹정부 출범 때부터 R&D 예산 '나눠주기식' 아닌 '선택·집중' 강조
최우수 연구자·국제협력 지원 확대…"과학기술 국정과제 이행 속도"
과학기술 기반 경제성장을 강조해오던 윤석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R&D(연구개발) 예산 배분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국가 R&D는 2018년 약 19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약 29조8000억원으로 5년새 10조원 이상 양적 증가한 상황이다. 하지만 한정된 R&D 예산 배분 시스템이 선택과 집중이 아닌 나눠주기식으로 전락해 R&D 시스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2일 과학계에 따르면 집권 2년 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가 과학 분야 국정과제 이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 정부는 과학기술 분야 국정과제 중 가장 첫 번째로 '국가혁신을 위한 과학기술 시스템 재설계'(국정과제 74번)를 꼽았다. 핵심은 R&D 질적 성장이다. 그동안 국가 R&D 예산은 양적으로 증가해 올해 30조7000억원을 찍었지만 '특허를 위한 특허'나 '연구를 위한 연구'가 덩달아 늘어나는 추세다.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윤석열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는 "R&D 투자의 성공을 위해 '나눠주기식 예산 배분'보다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전략적 예산배분'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게 현 정부의 국정방향"이라며 "이번 R&D 전면 재검토는 과학기술 시스템 재설계에 속도를 내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 갈라먹기식 R&D는 원점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R&D 국제협력은 세계적 수준의 공동 연구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메시지는 국가 R&D가 양적 성장에만 그쳐선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과학기술계 원로들로부터 R&D 과제 배분이 나눠먹기식이 아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인수위 시절에도 나눠먹기가 아닌 선택·집중형 배분 구조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연구자들 간 카르텔을 형성해 인맥을 통해 과제를 기획·배분·수행하는 경우가 있어 실질적인 연구 경쟁력 제고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일부 있었다. 또 그동안 국가 R&D만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이른바 '좀비 기업'들이 '예산 따먹기'를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2018년까지 좀비기업은 약 900곳에 달했다.
또 글로벌 기술 경쟁과는 뒤떨어진 '연구를 위한 연구'도 다수 있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년여간 미국항공우주국(NASA)·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를 비롯해 MIT(매사추세츠공과대), 하버드대, 뉴욕대, 캐나다 토론토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프랑스 소르본대 등을 찾아 해외 석학들과 직접 대화하며 국내 연구진과 협력 등을 요청해 왔다.
하지만 과기정통부가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 조정안'에 국제 협력 연구나 선택·집중형 R&D 배분 등의 체계를 담지 못해 전면 재검토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양자, 우주, 바이오, 차세대 원전 등 국가전략기술에 집중 투자를 강조해 왔으나 과기정통부가 관행대로 전 분야에 고른 투자를 하면서 이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관측이다.
과기정통부는 내년 R&D사업 예산 배분을 조정 중이다. 과학기술기본법 제12조2 5항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주요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내역을 매년 6월30일까지 기획재정부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이 시일을 넘겨 각종 보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가 R&D를 수행하는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현장은 R&D 시스템 재설계에 긴장하면서도 관련 사항에 유보적인 입장이다.
한편, 감사원은 지난달 28일부터 과기정통부와 KISTEP, 한국연구재단,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 11개 R&D 기획·관리 기관에 대해 실지감사(현장감사)를 개시했다. 연구 현장 일각에선 R&D 예산 배분 체계 조정과 함께 새로운 체계에 맞는 출연연 역할·기능 조정도 이뤄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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