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책의 사건화, 중재·대화 필요한 곳에도 수사·기소 칼날만

장현은 2023. 7. 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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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노조탄압]

‘양회동 열사 투쟁 노동시민사회종교문화단체 공동행동’ 주최로 지난 5월31일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열린 추모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천막 분향소를 설치하자 경찰이 강제로 철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오늘 면허정지 처분 사전통지서(통지서)를 받았습니다. 내일 우리 딸 두 돌인데요, 가족은 ‘감옥 가는 것 아니냐’고 내 걱정만 합니다.”

7년차 타워크레인 노동자 홍아무개(41)씨는 지난달 28일 <한겨레>에 ‘국가기술자격법 위반(성실의무)에 따른 자격정지’라고 적힌 통지서를 내보였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의 ‘건폭’(건설폭력) 발언 이후 수사기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전방위적인 공세가 홍씨가 속한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향했다. 건설노조에서만 1027명이 경찰 소환조사를 받았고(5월 기준),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3지대장이 5월1일 이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홍씨는 국토교통부가 3월 내놓은 ‘건설기계 조종사의 국가기술자격 행정처분 가이드라인’ 등에 따라 이날 자격정지 사전 통지서를 받았다. 통지서는 홍씨가 바람 세기, 신호수 배치 등 안전 문제를 이유로 작업을 미뤄달라고 요청한 일을 ‘태업’으로 규정했다.

홍씨는 이런 과정이 불러온 건설 현장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민과 대화의 상실을 짚었다. “장시간 위험 노동을 줄이기 위해 노조가 일터에서 회사와 교섭하고 대화하는 기회는 사라졌고, 중앙 차원에서 이뤄지던 노-정 대화도 멈췄잖아요. 건설 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노사법치는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준법을 강조하며 수사와 처벌을 개혁의 핵심 동력으로 삼는 윤 대통령의 ‘법치’는 정책 변화를 통해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혁’에 있어 적절한 시작점이 아니라고 현장 노동자와 전문가들은 짚었다. 오히려 정책의 일관성, 정교화, 추진 동력이 사정 기관의 개입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의 사건화

‘북핵 위협’(화물연대), ‘건폭’(건설노조)부터 ‘사교육 카르텔’(학원)에 이르기까지 노동·교육 현안에서 ‘불법 행위자’를 강렬한 단어로 지목하는 윤 대통령의 정책 추진 방식은, 우선 정책을 단순한 ‘사건’ 차원에서 접근하도록 만든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노사 가운데 한 쪽의 잘못만을 따질 수 없는 비합리적인 상황을 고민하기보다 노조에 대해서만 실정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처벌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라며 “이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제 제기까지 모두 묻어 버린다”고 짚었다. 가령 화물연대와 건설노조의 경우 비정상적인 원·하청 산업 구조의 정상화, 장시간·위험 노동의 개선 등을 정부와 교감을 통해 추진해왔는데, 현재 이런 논의는 멈춘 상태다. 대신 현장의 불법 단속 수준에서만 운송·건설 노동 현안이 맴돌고 있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책의 대상과 방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계획에 따라 정책을 만드는 데 익숙한 관료들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선 제도와의 정합성, 복잡한 이해관계, 개혁의 지향점을 고려하며 나와야 할 정책이 즉흥적이고 다급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단적으로 대통령의 ‘사교육 카르텔’ 발언(6월15일) 뒤 지난달 26일 교육부가 내놓은 ‘사교육 경감 대책’에선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기능과 역할 재정립, 고교 학점제 이후 평가와 대입 선발 방식 등 앞서 정해진 정책 방향과 맞물려 경쟁적 교육 환경을 완화할 대책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대통령이 짚은 ‘킬러문항’과 ‘사교육 카르텔 단속’에 집중했다.

합의의 상실

공권력을 동원한 ‘법치’는 대화와 합의보다 강 대 강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달 7일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에 대한 강경 진압을 이유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의 사회적 대화 중단을 결정했다. 사회적 대화에 열린 태도를 보이던 한국노총마저 등을 돌린 상황에도, 대통령실은 이튿날 “경사노위 유지를 위해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원칙을 바꾼다고?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개혁 추진에 필수적인 ‘정책 동력’이라는 현실적인 필요를 고려할 때 이런 정부의 행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회 구조 개혁은 국회 심의와 다양한 법 개정을 필요로 하는데, 여소야대 상황에서 그나마 정책 추진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는 ‘사회적 합의’라는 명분마저 구할 통로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3월 정부가 노동개혁 1호로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근로기준법 개정안)도 사회적 합의 없이 내놓은 뒤 시민 반발에 부닥쳐 한발 물러섰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개혁을 꾀하는 정부라면 그나마 정책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유화적인 한국노총과는 협의를 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런 모습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핵심 보수 지지층 결집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책 추진은 희생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사회적 고통 비용

개혁에 있어 ‘법치’의 효용성은 불분명한 반면 대상이 된 시민의 경제적·심리적 고통은 구체적이다. 이는 그 자체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다. 화물연대 파업 사건을 담당한 최경아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기소될 만한 사유가 아님에도 무리하게 기소된 화물 운송 노동자들이 많은데, 조사받고 공판에 출석하는 과정 그 자체로 생계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공포를 느껴 정당한 노조 활동 위축에까지 이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방위적인 수사와 조사에 시달린 데다 동료의 죽음을 겪은 건설노조 노동자의 ‘집단적 트라우마’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건설노조가 경찰·검찰·법원 등에 출석한 경험이 있는 조합원 29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10명 중 3명이 자살을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트레스 고위험군은 55.3%로 일반 사업장의 5배에 가까웠다. 타워크레인 노동자 홍씨는 “남에게 피해 안 주려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된 것 같은 상황에 삶에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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