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루스를 깨우려는 오타니, 매일 역사를 바꾸지만 궁극의 최고는 WAR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메이저리그에 '라이브볼(live-ball) 시대'가 열린 것은 1920년이다.
제조 기술의 발달로 공인구 내부에 단단한 코르크를 박아 반발력을 높이는가 하면 야구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투수의 투구에 제한을 가한 것도 그 해다.
1920년 8월 17일(이하 한국시각)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레이 채프먼이 뉴욕 양키스 투수 칼 메이스의 공에 머리를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메이스의 '스핏볼(spitball)', 즉 침을 발라 던진 공이 채프먼의 머리를 강타했는데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2시간 뒤 숨을 거두고 만다.
메이저리그는 당시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 커미셔너의 주도로 야구 규칙을 개정했다. 공에 흠집을 내거나 이물질을 바르는 행위가 공식 금지됐고, 투구 도중 흙이 묻을 경우 곧바로 새 공으로 교체하도록 했다. 또 타자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헬멧도 고안된다.
투수들은 더 이상 '이상한 공'을 던질 수 없게 됐고, 타자들은 헬멧의 보호를 받으며 반발력이 좋아진, 눈에 잘 보이는 깨끗한 공을 치면서 메이저리그 야구는 타자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1920년을 기준으로 라이브볼 시대가 개막됐음은 기록으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1910~1920년 사이에 8명의 투수가 한 시즌 30승 이상을 거뒀다. 하지만 1921년 이후 작년까지 102년 동안 한 시즌 30승 투수는 1931년 레프티 그로브, 1934년 디지 딘, 그리고 1968년 데니 맥클레인 등 3명 뿐이다.
또한 1910년부터 1919년까지 10년 동안 1점대 평균자책점 투수는 72명이나 탄생했지만, 1920년부터 1929년까지 10년 동안에는 2명 밖에 안 나왔다.
라이브볼 시대를 주도한 선수가 바로 베이브 루스다. 루스는 1920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면서 역사에 길이 남는 홈런 타자로 활약을 시작했다. 1919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29홈런을 때리며 당시 한 시즌 최다 기록을 세운 루스는 양키스로 옮긴 1920년 그 2배에 가까운 54홈런을 터뜨리며 새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루스는 더 많은 홈런을 치기 위해 배트 무게를 늘리고 어퍼 스윙을 채용했다. 루스의 롱볼 야구는 1920년대 데뷔한 루 게릭이나 멜 오트 등 당대를 호령했던 스타 선수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홈런이 득점의 중요한 방식으로 떠올랐음은 물론 이전에 이미 안타 야구로 시대를 풍미하던 타이 콥, 조지 시즐러, 트리스 스피커 같은 정교한 타자들도 공격적인 야구로 전성기를 이어갔다.
시즐러가 한 시즌 최다인 257안타를 터뜨린 것도 1920년(2004년 스즈키 이치로가 262안타로 경신)이고, 역대 한 시즌 최다 안타 '톱10' 가운데 1920~1930년 사이에 작성된 게 7개나 된다. 메이저리그 역사를 1920년 전과 후로 구분하는 이유다.
라이브볼 시대를 열어 젖힌 루스는 100년이 흐른 지금까지 역대 최고의 타자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행크 애런이 통산 최다홈런 기록의 새 주인이 되고, 로저 매리스, 마크 맥과이어, 배리 본즈가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빼앗았지만, 루스는 라이브볼 시대의 '넘버1'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역대 최고의 시즌도 루스가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베이스볼 레퍼런스가 제공하는 WAR(bWAR) 부문서 1920년 이후 역대 1위의 시즌은 루스의 1923년이다. 그해 루스의 bWAR은 14.1이다. 152경기에 출전해 타율 0.393(522타수 151안타), 41홈런, 130타점, 151득점, 170볼넷, 출루율 0.545, 장타율 0.764, OPS 1.309, 399루타를 기록했다. 양 리그를 합쳐 홈런, 타점, 득점, 볼넷 등 무려 9개 부문 1위에 올라 만장일치로 MVP에 뽑혔다.
루스의 bWAR은 1921년(12.9), 1927년(12.6), 1920년(11.9), 1926년(11.4) 순이다. 60홈런을 터뜨린 1927년 시즌도 1923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1985년 드와이트 구든이 13.3으로 라이브볼 시대 bWAR 2위에 올라 있고, 루스를 제외한 타자로는 1967년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칼 아스트렘스키가 12.4로 2위다. 그 다음이 2001년 73홈런을 날린 배리 본즈가 11.9로 3위.
요며칠 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시즌을 예감하며 반환점을 돌았다. 1일 현재 오타니는 bWAR 6.6으로 이 부문서 압도적인 1위다. 2위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4.8)보다 1.8이 높다.
WAR은 투타를 막론, 전체 선수들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다. WAR 1위가 MVP가 될 확률이 높다. 오타니는 시즌 개막부터 1일까지의 페이스를 계속 유지하면 올해 bWAR 12.6을 기록하게 된다. 야스트렘스키를 넘어서는 라이브볼 시대 타자 2위의 기록이 된다. 지난달 역대 최고의 한 달을 보낸 오타니가 정확히 100년 전 루스의 기록에도 가까이 갈 수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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