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모 찾는 입양아들 “보호출산제, 아동의 알 권리도 보장돼야”

최다원 2023. 7. 3.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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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고아·입양아 5명 심층 인터뷰
보호출산제, 생명보호 vs 알 권리 논란
"생부모 정보 아는 것은 아동 기본권"
게티이미지뱅크
‘음력 1969년 4월 17일 출생.’

김진석(가명·54)씨는 3년 전에야 자신의 ‘진짜 생일'을 알게 됐다. 시작은 어머니의 우연한 말실수였다. 김씨가 캐묻자 모친은 그제서야 자신이 생모가 아니란 사실을 50년 만에 털어놨다. 동네 알선업자로부터 생모를 소개받아 세 살이던 김씨를 데려왔다는 놀라운 진실. 입양기관도 거치지 않은 사적 입양이었고, 생부의 성은 윤씨라고 했다. 평생 자신을 김씨 일가의 외동아들로 알고 살아온 그가 받은 충격은 컸다.

그날 이후 김씨 머릿속엔 ‘나는 누구인가’ 질문만 맴돌았고, 이윽고 뿌리를 찾고 싶단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생부모가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았던 탓에, 서류로 남은 생부모의 흔적은 전무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기 출생지에 뿌리를 둔 윤씨 가문 5곳에도 연락을 돌려봤지만 소득은 없었다.

‘2000. 5. 10. 오후 2시 28분. 3.66kg. O형의 귀여운 아기.’

미혼모 보호 시설이 있는 보육원에서 자란 안재모(23)씨가 보관하는 낡은 육아수첩에는 그의 탄생 순간이 이렇게 적혀있다. 그는 이 글귀를 토대로 ‘2000년 당시 미혼모였던 생모가 5월 10일 오후 이곳에서 자신을 낳았다’고만 짐작하고 있다. 다른 정보는 없다. 출산 사실이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았던 생모는 수첩에 이름 석 자 남겨두지 않고, 어린 아들 곁을 떠났다. 생모가 아들을 보육원에 맡겼을 때 인적 사항을 적어뒀을 수 있지만, 생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이를 열람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한다. 안씨는 “보육원에는 이마저도 모르는 애들이 태반”이라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뜨거운 감자 '보호출산제'

'태어났으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유령 영아들의 유기·사망 사건을 막기 위한 정부·국회의 대책 마련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산모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는 ‘출생통보제’는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황. 정부는 "출생통보제 하나만 시행되면 출산을 숨기려는 산모가 병원 밖에서 위험한 출산을 할 수 있다"며 보호출산제 병행 도입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익명 출산을 허용하면 “훗날 아동이 자신의 뿌리를 찾고 정체성을 가질 권리를 침해한다”는 반대도 적지 않다.

이에 한국일보는 2일 입양아인 김씨와 안씨를 비롯해, 친부모의 뿌리를 애타게 찾고 있는 고아·입양인 5명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이들은 "엄마와 아기를 위험한 순간으로 내모는 것을 방지하려는 보호출산제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너무 익명성을 강조하면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알 권리가 무시당할 수 있다"며 "아동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뿌리 찾기는 난관의 연속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모습. 연합뉴스

보육원에 보내지거나 입양된 아이들이 성년이 된 후 뿌리(생부모의 흔적) 찾기에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국가가 체계적으로 친생부모에 대한 기록을 관리하기 시작한 게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2년 입양특례법을 개정하기 전에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도 생부모가 아이를 다른 가정으로 입양 보낼 수 있었다. 또 보증인 2명만 있으면 남의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등록할 수 있었던 ‘출생신고 인우보증제’가 폐지된 것도 불과 2016년이다. 만에 하나 입양·보육기관에 아동 입소 기록이 남아있다고 해도 생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열람은 불가능하다.

이들이 뿌리를 찾기 위해 넘어야 할 것은 제도적 장벽만이 아니다. 30대가 돼서야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정은(가명·42)씨는 작은 실마리라도 얻으려고 생모가 출산하다 숨진 병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병원장으로부터 "왜 찾느냐? 대학까지 보내준 양부모에게 예의가 아니다"라는 꾸지람을 듣고 왔다고 한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이런 제도적 난관과 사회의 무관심에도 이들이 혈족을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육원에서 지내다 여섯 살에 입양된 박경수(가명·23)씨는 '인생의 일부분이 단절된 것과 같은 느낌'을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를 봐도 앞에 10분을 놓치면 찝찝함이 남아있잖아요. 제 인생이 바로 그래요." 그는 영아 시절 탯줄이 달린 상태로 종이가방 안에 담겨 주차장에 방치됐다가, 지나가던 주민에게 발견돼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단다. 이정은씨 생각도 비슷했다. “몸에 이상이 생겨 진료를 받았는데, 병명을 알려주지 않는 그런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결국 입양아들에게 뿌리 찾기는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셈.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생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권리를 아동의 기본권으로 명시한 배경이기도 하다.


"보호출산제, '알 권리' 더 보장돼야"

안재모씨의 육아수첩. 안씨 제공

그런 막막함을 경험했던 고아·입양아들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보호출산제를 두고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복지부는 ‘보호출산 증서’를 작성하도록 하면 아동의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보호출산(익명 출산)을 신청한 산모가 본인이나 생부의 이름·주민번호 등 인적 사항을 적은 증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나중에 성년이 된 아이가 이 증서에 대한 열람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성년자 또한 법정대리인 동의를 받으면 청구할 수 있다.

다만 보호출산 증서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열람은 친모나 친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독일은 생부모가 정보공개를 거부해도 가정법원 판결에 따라 ‘혈통증서’ 공개가 가능한 신뢰출산제를 시행하고 있다. 생모 동의를 받아야 하는 프랑스의 보호출산제와 다른 점이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토록 간절한 노력 끝에 생부모를 만나면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을까. 자신을 지키지 않은 부모를 수만 번이나 원하고 원망했을 이들은 정작 부모를 탓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미 양부모가 세상을 떠난 정상호(가명·66)씨는 말했다. “(생부모가) 만약 살아계신다면 절 버렸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으실 거예요. 저는 잘 컸으니 걱정하지 말란 얘기 해드리고 싶어요. 또 미안하다는 말도 듣고 싶네요."

이미 성인이 된 안재모씨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조금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길 바랐다. “이제까지 생일은 보육원에서 애들과 함께 후원 물품을 받는 게 전부였어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부모님의) 생일 선물을 받고 싶어요.”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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