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세력 15년 조폭행태... 최대 피해자는 중소 상인들이었다
분양 업무 못해 건설사 부도도
중소 여행사를 운영하는 양모씨는 15년 전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2008년 4월 우리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를 결정하자, ‘광우병에 걸린 미국 소를 먹으면 머리에 구멍이 숭숭 난다’는 식의 괴담이 휩쓸 때였다. ‘괴담 지지자’들이 ‘조중동’ 등 이른바 보수 신문을 폐간시켜야 한다며, 이들 신문 광고주에 집단적으로 협박성 전화를 걸었다.
양씨는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그해 6월 2일 자 조선일보에 해외여행 상품을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히 적은 5단 흑백 광고를 실었다. 중소 여행사에 신문 광고는 가장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었다. 광고가 게재된 날, 아침부터 예약 문의 대신 “광고를 중단하지 않으면, 여행사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식의 협박성 전화가 쏟아졌다. 광고를 실은 다른 여행사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 자동 접속 프로그램으로 많게는 7000회씩 홈페이지에 접속해 항의를 하며 서버를 마비시켰다. 양씨는 본지 통화에서 “협박으로 여름 성수기를 날리는 바람에 매출이 40% 넘게 줄고, 직원들도 일부 회사를 떠났다”며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그냥 사업하는 사람인데,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괴담이 퍼질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언론의 광고주를 공격하는 것이다. 본지는 2008~2009년 광우병 괴담 사태 당시 ‘광고주 협박’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당시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 관련 판결문, 광고주 불매운동을 벌였던 16명에 대한 판결문, 검찰 공소장, 수사 검사의 의견서, 광고주들의 피해 사실 확인서 등을 입수해 분석했다.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중소 광고주들이었다. 해당 매체 광고가 영업의 거의 유일한 수단이고, 대응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의 최대 피해자가 어민과 수산시장 상인, 횟집 같은 영세 업체들인 것과 같았다.
◇괴담의 최대 피해자 된 중소 상인들
당시 자료에는 ‘신문 광고’가 거의 유일한 영업·판매 방법이었던 중소 기업·상인들의 피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작은 2008년 5월 인터넷 포털 다음에 개설된 카페 ‘조중동 폐간 국민 캠페인(이후 언소주로 개칭)’이었다. 이 카페 운영진과 회원은 항의 전화를 집중할 광고주 좌표 찍어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를 ‘숙제’라고 불렀다.
당시 서울 종로에 있던 ‘보인당 본점’은 직원 5명을 둔 70년 전통의 인장(印章) 전문점이었다. 수십 년 동안 조선일보에 매월 2~3회 광고를 실었다. 신문광고로 인한 매출이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8년 6월 5단 광고를 두 차례 게재한 후 협박 전화가 쏟아졌다. “조중동에 광고를 게재하지 말라. 꼭 해야 한다면 한겨레·경향에 광고를 실어라”는 내용이었다.
2008~2009년 광우병 괴담 당시 불매운동 리스트에 오른 회사는 규모를 가리지 않고 800여 곳이나 됐다. 건설사 5곳의 아파트·상가 분양 대행사 ‘D사’도 신문에 분양 광고를 한 후 수백 통 항의 전화에 시달렸다. 분양이 안 돼, D사에 분양대행을 맡겼던 건설사 중 한 곳은 그해 7월 부도까지 났다. 한 비뇨기과 의원은 광고를 낸 날 200통 이상 항의 전화가 폭주해 병원 업무가 마비됐다. 급한 수술 환자와 재진 환자 예약 업무까지 완전히 마비됐다. ‘광고주 협박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는 당시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피고인들은) 매일 아침 (공격할) 리스트를 작성해 인터넷에 올려 마치 굶주린 맹수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듯 했다. 소규모 영세 사업장일수록 피해는 더 극심했다”고 밝혔다.
◇”조중동 대신 한겨레·경향에 광고” 요구
언소주 등은 광고주에 대한 집단 항의전화는 ‘정당한 소비자 권리’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실상은 자신들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사를 압박해 입을 막고, 우군(友軍)인 특정 언론에 광고를 하라고 압박해 언론 지형을 유리하게 바꾸려는 목적이었다.
조중동 광고주 불매 운동을 하던 이들은 한 비타민 음료 회사에 광고 중단을 요구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불매운동 단체 사람을 만나 “광고 효과 등을 감안할 때, 조중동 광고 중단은 불가능하다”는 회사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자 이들은 “그렇다면 한겨레·경향신문에도 조중동과 똑같은 규모의 광고를 집행하라”고 요구했다.
광우병 괴담 사태 당시 광고 중단 협박에 적극 참여했던 이들은 업무방해 협의로 대법원에서 대부분 유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이들에 대해 “집단적 괴롭히기 또는 공격의 양상을 띠며, 광고주들의 자유의사를 심각하게 제압하는 세력에 이르게 됐다”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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