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 빈곤·저학력 불만 쌓여… 佛 부흥의 축에서 ‘화약고’로

낭테르(프랑스)/정철환 특파원 2023. 7. 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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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민자 폭동] 관용의 나라, 이민 부작용에 몸살
지난달 27일 알제리계 프랑스인 나엘(17)이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에 항의하는 청년들이 2일(현지 시각) 니스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프랑스 주요 도시에 4만5000명의 경찰과 헌병을 집중 투입했다./AFP 연합뉴스

아프리카 이민 가정 출신 청소년인 나엘이 경찰 단속을 피하다 숨지고 나서 폭력 시위가 확산한 낭테르 중심가엔 지난 1일(현지 시각) 불타서 뼈대만 남은 승용차와 쓰레기통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흘 연속으로 벌어진 폭력 시위로 도로변 수퍼마켓과 의류 상점의 창문은 산산조각이 났고, 벽엔 마치 불덩이를 맞은 듯 검게 그을린 흔적들이 즐비했다. 시위대의 주요 무기는 폭죽과 가스통이다. 빛을 뿜으며 수백m 뻗어나가는 불꽃놀이용 폭죽을 진압 경찰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쏘아댄다. 이 과정에서 길가의 자동차나, 쓰레기통, 상점에 불꽃이 날아들면서 연쇄 화재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이후 밤샘 시위가 벌어진 파리 중심가에선 1시간 이상 계속된 폭죽 소리와 가스통 폭발음으로 시민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간 르몽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위용 폭죽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며 “일부 업자들은 대량 구매에 파격 할인까지 제공하면서 폭력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튜브 등에 시위대가 오토바이에 전동 톱을 매달고 시위하는 장면까지 올라오면서 과격한 폭력 시위로 인해 추가 사상자가 나올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7월 1일 프랑스 파리 교외 낭테르에서 한밤에 일어난 시위 도중 불에 탄 차량이 뼈대만 남아 있다./로이터 뉴스1

한때 프랑스의 성장 동력이었던 관대로운 이주민 수용 정책이 이들의 사회 융합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장기간 누적된 이주자 집단의 불만이 초래하는 갈등은 점점 더 과격한 모습으로 분출되는 상황이다. 프랑스 이주자 중 빈곤·저학력·실업 등 고질적 문제를 떨쳐내지 못하는 이들은 식민지 출신 ‘2등 시민’으로 차별받으며 도심 외곽의 저소득층 주거 단지인 ‘방리유(banlieue·외곽)’에 모여 산다. 이번 총격 사건이 발생한 낭테르가 대표적인 방리유다. 경찰의 과잉진압 등 이주자의 폭력 시위를 촉발하는 사건들은 대부분 이 지역들에서 발생한다.

그래픽=양진경

프랑스는 ‘자유·평등·박애’를 국가 정신으로 삼으면서, 완전한 ‘프랑스화(化)’를 이주자 정책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이상(理想)적인 이주 정책의 틀이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 이주 정책의 원칙은 ‘공화주의적 통합’을 내세운다. 출신국의 풍습과 생활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미국·영국 등의 다문화주의와 달리, 이민자가 인종·종교적 특성을 포기하고 ‘프랑스 공화국’에 완전히 통합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얼핏 들으면 이상적이지만 종교적 신념에 따른 엄격한 삶의 방식을 포기하기 어려운 무슬림 등에겐 정착과 동화에 오히려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평가가 많다. 이주자가 많은 알제리·튀니지·모로코 등은 모두 무슬림 국가다.

프랑스는 헌법에 명시된 ‘비(非)종교국’이라는 원칙에 따라 공립학교에서의 히잡 착용과 공공장소에서의 부르카 착용 등도 금지하고 있다. 명분은 ‘통합’이지만 무슬림 출신 이주자들에겐 억압과 차별을 유발한다. 겉으로는 융합과 평등을 내세우면서도 진학과 취업 등에 있어선 이민 후 2·3세대에까지 여전히 차별이 많은 현실도 이주자 사회에 염증(厭症)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다.

프랑스는 법으로 ‘출신 집단에 따른 차이나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정해두었기 때문에 미국 등의 기업에서 다양성 확보를 위해 시행 중인 소수 인종 우대책 등도 시행할 수 없다. 1세대 이주자 가정의 열악한 환경을 뛰어넘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사회의 ‘안전판’이 미국 등에 비해 적다는 뜻이다.

실제로 2020년 프랑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압둘·사미라 등 무슬림권 이름을 가진 지원자는 장피에르·마리안 등 프랑스 ‘원조’ 이름을 가진 지원자에 비해 입사 시 서류 전형에서 합격할 확률이 약 4분의 1밖에 안 됐다. 가디언에 따르면 2015년 방리유 지역에 거주하는 이민자들의 실업률은 22%로 전국 평균의 두 배에 달하고, 청년 실업률은 40%에 이른다. 이 지역 어린이 5명 중 3명은 빈곤 가정에 살고 있다.

슬럼화된 방리유에선 주민과 경찰 간 잦은 마찰이 반복되면서 이민자 폭동은 점점 과격화하고 있다. 1979년 리옹 교외의 발스앙벨린에서 한 북아프리카계 청년이 경찰에 체포된 것을 계기로 폭동이 발생한 이래로 최소 8차례의 크고 작은 폭동이 방리유에서 발생했다. 가디언은 “이번 폭동의 분노는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의 정신 그 자체를 향해 있다”며 “방리유에 소외돼 사는 인구의 상당수는 이런 이상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느끼거나 단순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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