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법, 잇단 보수적 판결
미 연방대법원이 소수 인종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 대학 학자금 대출 탕감 등을 두고 잇따라 ‘보수적 판결’을 내놓으면서 진영 간 이념 갈등이 다시 거세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법관이 9명 중 6명이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우위’인 대법원이 대형 사안을 두고 예외 없이 보수 쪽으로 기울자, 진보 진영에서 “대법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작년 6월) 대법원이 임신 6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도록 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데 이어 또다시 ‘이념 갈등’이 불붙고 있다”며 “내년 대선을 두고 ‘대법원의 보수화’가 진영 간 첨예한 논쟁 거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연간 소득 12만5000달러(부부 합산 25만달러) 미만의 가구를 대상으로 최대 2만달러까지 학자금 채무를 면제해주도록 한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에 반발해 제기된 소송에서 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은 ‘1인당 1만달러’씩 연방 정부 학자금 대출을 탕감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중도 성향 바이든의 약한 고리인 ‘2030′ 유권자들을 끌어당기기 위한 것이었다. 조 바이든은 당선 직후엔 공약 이행을 하지 않다가, 중간 선거를 3개월 앞둔 지난해 8월에야 구체적인 탕감 방안을 발표했다. 미 의회예산국은 약 4000억달러(약 527조6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공화당 진영에선 “행정부가 선거를 노리고 재정을 마음대로 풀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었다. 이날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비롯한 6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들도 “행정부가 이같이 많은 비용을 수반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엔 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며 “행정부엔 (이런 거대 정책을 추진할) 독자적 권한이 없다”고 했다.
바이든은 판결 직후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대법원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학자금 대출 탕감 계획을 중단하려는 대법원의 결정은 잘못됐으며 실수”라며 “대출 탕감 추진을 위한 새로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이날 별도 판결에서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에 대해 서비스 제공을 거부할 수 있게 해달라는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공공 사업장에서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를 규정한 주(州)법과,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 중 어떤 것이 우선하느냐는 것이 쟁점이었다. 이 판결도 보수 성향의 6명 대법관 모두 업체가 동성 커플에 대한 서비스 제공 여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최근 흑인 유권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선거구를 나눈 주(州)들의 결정에 제동을 거는 이례적 판결을 잇따라 내놨었다. 보수 대법관들이 기존 이념 구도를 탈피해 진보 판사들과 의견을 함께하는 이례적 판결에 이목이 집중됐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날 2건의 재판 모두 보수적 결론을 내리면서 이번 회기를 마치자, 민주당은 “대형 사건에선 보수 결론을 내리기 위해 일시적으로 눈속임을 한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민주당 내 강성 세력이 대법관 정원 확대, 대법관 임기제 등 ‘대법원 개혁’ 필요성을 본격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대법원의 잇따른 보수 판결에 위기를 느낀 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해 내년 대선에서 바이든에게 ‘호재’가 될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공화당 일각에선 “취약 지지층인 흑인·히스패닉의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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