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도시와 일상 속에 채워져야 할 어떤 익숙함
최근 출장을 위해 외국 항공기를 탄 적이 있다. 승객 중 네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갑갑함을 견디지 못했는지 이륙 직전부터 울음을 터트리더니 10시간이 넘는 비행 동안 그치지 않았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승객들의 반응이다. 잠을 못 자 신경이 곤두선 기색이 역력했지만, 승객들은 티케팅 운이 나빴다는 정도로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아이란 자주 우는 존재이다. 공공장소에서 아동을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나라에서는 ‘별일’이 되지 않은 것이다.
도쿄에서는 버스 기사들이 휠체어 승객의 탑승 지원을 위해 정류장마다 장시간 정차하는 일이 빈번하다. 조급한 승객들도 있지만 드러내는 사람은 드물다. 일본인들이 대단히 여유로워서 정차를 흔쾌히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평소 대중교통에 휠체어 탑승자가 빈번하다 보니 익숙해진 것이다. 도로 공사로 통행이 잠시 제한되더라도, 잠깐의 불편함을 견디려 하지 모든 정비 공사를 금지하자는 사람은 없는 것과 같다.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이들은 키즈카페, 장애인은 시설, 노인은 복지관으로만 모이니 일상에서 만날 기회가 없다. 동네에서 수다 떠는 이야기만 흘려들어도 낯섦은 어느 정도 풀어질 수 있을 텐데, 카페, 식당, 술집 등 일상에서 장애인, 우는 아이, 건배하는 노인과 청년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낯설다 보니 피하게 되고, 상호작용이 없다 보니 서로의 감정적 거리는 멀어진다. 배제는 권리 의식의 별개로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경험의 부족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다행히 올해에는 두 가지 반가운 소식이 있다. 탈시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거주하는 소셜믹스 사회주택 겸 지원주택 두 채가 각각 입주(서울 은평구 다다름하우스) 및 착공(경기 김포시 여기가)을 알렸다. 장애인이 별도 건물에 집단으로 거주하지 않고, 동네 안에서 한 명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이 정책은 주택과 전문적인 주거 자립 지원 서비스를 결합하여, 장애인의 독립 시 겪을 수 있는 물리적·정서적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정책이다. 특히 ‘다다름하우스’는 카페 운영을 함께함으로써 장애인과 지역 주민이 노동자로서 만날 수 있으며, ‘여기가’는 설계 때부터 중증장애인이 거주 가능한 유니버셜디자인(무장애 인테리어)이 적용되어 기대감이 더욱 크다.
슬픈 소식도 함께 들렸다. 지난 5월, ‘여기가’ 착공식 장소 맞은편에서는 탈시설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벌어졌다. 일부 정치인들은 시설 이해관계자의 주장을 받아, 탈시설이 장애인에 대한 방치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장애인 스스로 자립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다음을 기약하면 그만임에도, 비당사자가 방치를 논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지금까지는 같이 살아가는 누군가를 삭제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이제라도 물꼬를 튼 두 채의 사례가 시범사업을 넘어 익숙한 풍경이 되었을 때, 도시는 더 풍요롭고 매력적일 것이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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