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장마
장마철이 되면 우산만 잘 팔리는 것이 아니다. 비를 소재로 한 노래도 여기저기서 소비된다.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다섯손가락)이나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양수경) 등의 노래들이 사랑과 추억을 소환한다. “어제는 비 오는 종로 거리를/ 우산도 안 받고 혼자 걸었네”(그건 너)라고 노래한 이장희나,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 오고 해서”(그냥 걸었어)라고 노래한 임종환도 생각난다. 그러나 비를 부르는 노래라고 모두가 낭만적이지는 않다. 비와 더불어 어떤 각성을 부르는 노래도 있다.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5분50초 길이의 긴 서사구조를 가졌다. 오랜 시간 현장문화운동가였던 정태춘이 피를 토하듯 부른 노래다. 그가 “다시는 시청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라고 노래했지만, 그 이후로도 우리는 시청광장에 다시 나오고, 물대포에도 쓰러졌다.
음반 사전심의 철폐를 주장하면서 발표한 <아, 대한민국…>(1990)에 이은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사진)는 사전심의를 거부한 비합법 앨범이었다. 투쟁의 결과로 사전심의가 대법원에서 위헌 판정을 받고 폐지됐다. 정태춘이 ‘상업적 성공’을 포기하고 이들 앨범을 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시 장맛비에 종로 거리가 젖고 있다. 그런데 그 거리에 서 있는 오늘, 비장했던 정태춘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투쟁가를 부르며 빗속을 행진하는 노조의 깃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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