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압 차이의 위력, 에스프레소도 만들고 태풍도 만든다

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 2023. 7. 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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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최근 잠수정 ‘타이탄’을 타고 타이태닉호를 보려던 사람들이 전원 사망했다는 비극적 소식이 전해졌다. 사고 원인으로는 수심 4000미터에 가해지는 400기압의 높은 압력이 지목되고 있다. 여기서 압력의 단위 기압(氣壓)은 공기가 누르는 압력을 말한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각보다 무겁다. 1기압은 제곱미터당 무려 10톤이 누르는 압력으로, 대기압의 크기가 1기압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는 우리로서는 잘 와닿지 않는 단위이기도 하다. 인류가 1기압의 위력을 알게 된 것은 과학이 필요했던 어느 정치인 덕분이다.

1654년 독일 마그데부르크의 시장 오토 폰 게리케(Otto von Guericke)는 속이 빈 금속 반구 두 개를 이어 공 하나로 만든 후, 자신이 발명한 펌프로 공기를 뽑아냈다. 이렇게 진공이 잡히자 두 반구는 단단히 붙었고, 지름 불과 50cm의 구에는 말 30마리가 당겨야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 걸렸다. 그는 이 실험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및 고위 인사들이 보는 앞에서 진행했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는데, 이는 정치인 게리케의 고도로 계산된 행위였다. 독일을 휩쓴 종교 전쟁의 여파로 신성로마제국의 첫 수도였던 마그데부르크는 당시 존폐의 갈림길에 있었다.

그래픽=김현국

마그데부르크의 유력 가문에서 태어난 게리케는 어린 시절 유럽을 돌며 당시 막 터져 나오던 과학 혁명의 성과를 익혔다. 하지만 30년 전쟁에 휩쓸린 마그데부르크가 1631년 쑥대밭이 되자 집안도 몰락한다. 수만 명에 이르던 마그데부르크 인구는 고작 수백 명만이 남았고, 멀쩡하게 남은 건물이 없을 정도로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게리케는 1646년 도시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재건을 위해 ‘과학’을 들고 나왔다.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주변 국가들과 외교적 관계를 모색한다. 그러는 가운데 한 것이 반구 실험이었다. 그에게 과학은 중요한 외교 수단이었다.

당시 과학계는 진공에 대한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진공은 없다는 것이 오랜 믿음이었지만, 토리첼리와 파스칼은 액체로 가득 채운 시험관을 뒤집으면 빈 공간, 즉 진공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였다. 그리고 이 유리관 속 액체의 높이가 대기압의 크기라는 것도 밝혔다. 이러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진공도나 압력 단위로 토리첼리와 파스칼 이름을 딴 ‘토르(Torr)’와 ‘파스칼(Pa)’을 쓰고 있다. 게리케는 보이지 않는 대기압을 실제로 경험하게 만든다면 엄청나게 주목받으리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그의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진공과 대기압의 차이는 불과 1기압이지만 인류는 처음으로 그 위력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마그데부르크의 반구 실험으로, 역사에 ‘마그데부르크’라는 이름을 새겼다. 하지만 정작 ‘게리케’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실험의 목적은 게리케라는 개인의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마그데부르크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의도대로 실험 소식은 전 유럽을 강타했고, 마그데부르크는 과학으로 명성을 얻었다. 곳곳에서 초청이 쇄도하자, 게리케는 유력 인사들 앞에서 진공 실험을 계속하며 도시의 자치권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독일의 군소 국가들은 프로이센으로 합쳐지고 있었다. 1677년 여전히 시민들은 그를 지도자로 추대했으나 스스로 물러나고, 결국 마그데부르크는 프로이센에 흡수되었다. 나중에 그의 업적을 기려 마그데부르크 대학은 오토 폰 게리케 대학으로 이름 지었다.

게리케의 실험 이후 인류는 훨씬 큰 압력을 사용하게 된다. 압력밥솥 내부의 압력은 2기압이고, 샴페인 병은 6기압이며, 에스프레소 머신은 8기압이 넘고, 뻥튀기 기계는 대략 9~12기압이니, 먹거리에 쓰는 압력만 해도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위력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단위 면적당 작용하는 힘인 압력은 높아도 크기가 작으면 힘도 적기 때문이다. 팝콘이 터지는 압력도 9기압이지만, 팝콘 알갱이 크기가 뻥튀기 기계보다 훨씬 작으므로 팝콘 소리는 그만큼 작다.

반면 작은 압력 차라도 크기가 커지면 위력은 엄청나다. 바람은 기압 차로 발생한다. 저기압에 몰려든 기류가 상승하며 만들어지는 수백 킬로미터 크기의 태풍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1기압은 10만1325파스칼(Pa)에 해당한다. 일기예보에서 흔히 듣는 헥토파스칼(hPa)에서 ‘헥토’는 100을 일컫는 단위이므로, 대기압은 1013헥토파스칼에 해당한다. 작년 수퍼 태풍 힌남노가 우리나라에 상륙할 때 중심 기압은 950헥토파스칼로 대기압과 차이는 63헥토파스칼이었지만 순간 최고 풍속은 초속 43미터였다. 이는 사람이 날아갈 정도로 강력한 바람이다.

이처럼 1기압은 생각보다 큰 압력이다. 얼마 전 항공기가 착륙할 때 승객이 비상구 출입문을 연 사건이 있었다. 항공기가 운항하는 높은 상공은 객실 내부와 기압 차가 커서 마그데부르크의 실험처럼 웬만한 힘으로는 문을 열 수 없다. 하지만 사고가 일어난 고도는 지상 200미터 상공이라 기압 차가 작아서 가능했다. 차량이 물에 빠졌을 때 문을 열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 물속에서 1미터마다 압력은 0.1기압씩 올라가므로, 수심 1미터라도 무게가 제곱미터당 1톤 작용한다. 차량 내부까지 충분히 물이 찬 뒤에 문을 열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기압은 늘 주위에 있어도 체감하기 어렵다.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기에 그냥 지나쳐 버리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 과학의 매력은 어쩌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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