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의자·전기차에 뉴욕 ‘베슬’까지… ‘현대의 다빈치’ 손끝서 탄생
“사람들이 나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저 자신은 언제나 ‘만드는 사람(maker)’입니다.”
토마스 헤더윅(53)은 지난달 28일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했다. 영국 출신인 그는 뉴욕 맨해튼의 풍경을 바꾼 벌집 모양 전망대 베슬(Vessel), 구글이 직접 지은 첫 사옥인 실리콘밸리 베이뷰(Bay View·덴마크 건축회사 BIG와 공동 설계) 같은 작업으로 세계 건축계의 최첨단에 선 인물. 하지만 헤더윅이라는 이름은 건축가나 디자이너, 예술가라는 하나의 단어로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의자부터 교량, 수상(水上) 공원, 전기차를 넘나드는 작업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다빈치’라는 별명에는 천재적이라는 의미와 함께 일찍부터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 왔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그는 9월 6일까지 열리는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 전시 개막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런던 신형 2층버스(2010), 런던올림픽 성화대(2012), 맨해튼의 인공섬 공원 ‘리틀 아일랜드’(2021) 등 대표작 30점을 이번에 선보인다. 지금껏 잘 공개하지 않았던 스케치들도 나왔다. 그는 “창조적인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머리, 가슴 그리고 손”이라고 했다. 직접 손을 움직여 뭔가를 만드는 데서 창의성이 나오고, 섬세한 손길에서 비롯하는 작은 차이가 디자인의 가치를 높인다는 의미다.
◇건축가? 디자이너?... “나는 ‘만드는’ 사람”
팽이를 닮은 의자 ‘스펀 체어’는 그런 생각이 반영된 작품이다. “의자 하나를 디자인하고 끝나면 또 다른 의자를 디자인하면서 지쳤을 때, 오케스트라용 팀파니 만드는 장면을 우연히 보고 착안했어요. 바닥이 둥근 북처럼 모든 방향에서 대칭이 되는 의자는 어떨까 생각했죠. 나무와 고무찰흙으로 수없이 모형을 만들며 테스트한 끝에 지금의 형태가 나왔습니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자, 지금부터 획기적인 의자를 만들어야지’ 한다고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진 않아요.”
스펀 체어는 사람이 앉으면 멈추기 직전의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도록 만들어졌다. 의자는 똑바로 서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유쾌함과 즐거움이라는 감성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감성’은 헤더윅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다. 헤더윅은 “콘텐츠 없는 디자인은 의미가 없다”면서 “멋진 모양을 만드는 것보다 사람들이 디자인을 직접 경험하고, 상호 작용하면서 감흥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베슬은 원래 조각 작품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에서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길이 1마일(1.6㎞)의 산책로를 2500개의 계단으로 엮어서 사람들이 거닐 수 있게 했습니다. 구글의 베이뷰도 업무 공간을 층층이 단절시키지 않고 넓게 배치해서 사람들이 더 자주 서로 만나게 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헤더윅은 최근 서울시의 노들예술섬 프로젝트에 제안한 계획안도 형태보다는 방향성을 강조했다. “K뮤직이 굉장히 유명하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K뮤직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음악으로 사람들을 응집시킬 수 있는 휴식처 같은 공간을 제안한 것입니다. 센강이나 템스강보다 훨씬 넓은 한강의 노들섬은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자연의 공간입니다. 한복판에 그런 공간을 가진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아요.”
◇'영혼 없는 건물’은 그만
도시의 차원에서도 감성은 중요하다. 기능 위주로만 건물을 짓다 보면 사용자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게 되고, 영혼 없는 건물을 쉽게 허무는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사람들이 애착을 가지는 건물을 지어 오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헤더윅은 “그런 건물이 꼭 요란한 모양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면서 “오래됐다고 다 그런 건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런던에서 가장 사랑받는 거리들은 건축가가 디자인한 게 아닙니다. 건설업자들이 카탈로그에서 창호, 난간, 외장재 같은 것들을 하나씩 골라 지은 건물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죠. 건물 자체는 평범한 상자 모양이지만 섬세하고 복합적인 디테일이 감각을 자극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우리 시대에 맞는 카탈로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는 유럽인들도 이미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에 대한 호기심은 이제 고조되고 있다”면서 “이제는 서울이 다른 도시처럼 성장하는 차원을 넘어 서울만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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