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
약자에 공감 능력을 갖춘 세계관
대법원을 구성하는 데 반영해야
갈등의 공평한 판단에 긴요하다
대법원 재판의 균형감각은
그 구성의 다양화에서 나온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한 것과 관련하여 벌어진 논란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당초 발표된 8인의 제정 후보자 중 특정인 2인에 대하여 대통령실에서 언론을 통하여 임명 거부 의사를 미리 표시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 대법원장이 그 특정인이 아닌 사람들을 제청한 것이다. 요컨대 사법부 독립에 대한 침해와 이에 대한 굴종이 문제라는 것이 언론의 시각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번의 제청에서 여성 후보자가 없었던 점이다. 제청된 남성 후보자 2인이 대법관에 임명되면 여성 대법관은 3인으로 줄어드는데, 대법원을 서울대 출신의 50대 남성 위주로 구성하는 데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겐 실망스러운 결과일 게다. 어느 조직이든 구성원의 다양성은 조직의 가치 증진과 생명력 유지에 필수적이다. 대법원이라고 다를 리 없다. 실제로 대법관이 되기에 앞서 변호사 생활을 오래 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주심으로 집필한 판결을 읽다 보면, 당사자들이 참으로 답답해했을 만한 문제에서 종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해법을 내놓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대법관 후보자나 신임 대법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나 취임사에서 빠짐없이 하는 말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라는 게 있다. 누구에게나 법의 평등한 적용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굳이 사회적 약자 등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하는 것은 얼핏 모순되지 않는가 싶은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민주정의 기본원리 중 하나인 다수결 원리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할 위험성을 갖고 있다. 우리 헌법의 통치구조에서는 이런 위험으로부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는 부서가 사법부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거의 상투적이다시피 내놓는 그 말이 가상하기는 한데 과연 사회적 약자 등의 보호라는 게 대법관의 개인사나 출신 배경과 무관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를테면 부모들에게서 “없는 것들은 그저…”라거나 “여자가 무슨…”이라는 말을 늘 들으며 자란 사람이 판사가 되었을 때, 과연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고통과 좌절과 절망을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여 권익을 보호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최근에 취임한 대법관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 신분일 때 의원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후보자가 과거 하급심 재직 시 내린 판결로 ①500만원의 뇌물을 받은 교감 ②2억7000만원의 연구용역자금을 횡령한 대학교수 ③162만원 어치의 향응을 받은 국정원 직원은 징계양정기준을 어기고 모두 구제하고서도, “왜 자판기 커피를 마시려고 버스요금으로 받은 100원짜리 동전을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횡령한 버스 운전사의 해고는 정당하다며 그를 구제하지 않았는가, 그게 다섯 가족의 생계를 끊을 만한 사건인가?”라는 물음이었다. 우물쭈물하는 후보자에게 의원은 “후보자가 버스 운전사를 구제하지 않은 이유로 ‘내가 편향적이다. 내 삶이 20대 후반에 판사 돼서 30년 이것밖에 안 했고, 서초동 20년 살았다. 내 자산이 34억원이다. 대한민국 초일류층이다. 그러니 내가 편향적일 수밖에 없다. 내 주변에 버스 기사 친구들은 없다’라고 왜 말하지 않는가?”라며 따졌다.
문제를 확대해 보면 이렇다. 노동만으로는 개선되지 않는 가난, 성 차별, 신체적 장애, 특정지역 출신에 대한 편견, 직장 내 부당한 대우, ‘갑질’, 해고로 겪어야 하는 생활고와 절망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등 각종의 사회적인 이슈가 법정에 왔을 때 그 구조적 모순을 꿰뚫어보는 혜안과 이를 교정하겠다는 의지를 이 나라 최종심의 법관이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원만한 성품, 수월한 법률 실력, 오랜 재판 경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것을 다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느 판사가 사법농단 사건으로 판사직을 그만두고 몸소 검찰의 수사를 받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무죄추정의 원칙, 적법절차, 증거재판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했던 이야기를 들어 보라.
나는 극단적인 불행을 체험한 사람이 대법관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겪는 고통과 불이익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의 세계관과 사법철학을 대법원의 구성에 반영해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복잡하고도 심각한 대립과 갈등을 공평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하는 데 긴요하다고 말할 뿐이다. “판사의 자질은 곧 재판의 질과 같다”라고 한 로버트 레플러 교수의 말이 옳다면, 대법원 재판의 균형감각은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에서 나올 것이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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