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유배, 버림 속에 스스로 나아가다

강이라 소설가 2023. 7. 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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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라 소설가

‘보릿고개 험하기가 태항산 같았으니 단오가 지나야만 곡식 익기 시작되네. 그 뉘라 풋 보리죽 한 사발을 들고 가서 비변사의 대감들께 맛보시라 나눠줄까’.

다산 정약용의 시 ‘장기농가’의 첫 수입니다. 정약용이 유배지인 장기에서 지은 민요풍의 연작시로 총 10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약용은 1801년(순조 1)에 신유옥사가 일어나자 탄핵을 받고 두 형과 함께 경상도 장기현-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유배됩니다. 정약용은 자신의 눈에 비친 지역 백성들의 생활 환경과 노동 현장을 객관적 태도로 묘사하여 칠언절구 형식의 짧은 시로 형상화했습니다. 이후 전남 강진으로 옮겨 18년 유배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활발한 저술을 통해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포함한 500여 권의 책을 지었습니다. 장기와 강진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깊은 좌절도 안겨주었지만, 최고의 실학자가 되는 밑거름이 되어 유배라는 정치적 탄압 속에서도 학문을 추구하고 많은 책을 짓는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정약용에게 유배는 시련을 넘어서는 성숙과 성장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비단 정약용뿐일까요.

청탁 원고를 마감을 훌쩍 넘겨서야 간신히 넘기고 도망치듯 제주로 떠났습니다. 도착한 다음 날 향한 첫 여행지는 대정읍에 위치한 추사 김정희 유배지였습니다. 좋아하는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추사기념관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추사가 머물렀던 유배지와 낮은 마을의 풍광을 해치지 않도록 높이를 낮춰 단순하게 설계된 건축물도 인상적이었지만 기념관 안에 전시된 추사 관련 기록물과 서적, 서화에서 더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추사 김정희는 성균관 대사성 관직을 맡던 1840년 윤상도의 옥에 연루되어 고초를 당한 후 제주도로 유배당합니다. 1852년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무려 12년을 절해고도 제주에 갇혀 지낸 것입니다. 하지만 추사는 제주 유배라는 극한 상황을 자기 수양의 시간으로 삼았습니다. 고대 금석문을 연구하면서 강한 골격과 획법을 익히며 너무 기름지고 획에 골기가 적었던 서체의 흠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유배지에서 태어난 국보 180호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의 완숙한 경지를 보여주는 걸작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남해 노도에 위리안치되어 국문소설 ‘구운몽’을 쓴 김만중, 담양의 유배 시기에 가사 문학의 백미인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은 송강 정철, 보길도에서 시조 ‘오우가’, ‘어부사시사’를 노래한 고산 윤선도까지 유배지에서 피어난 문학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유배는 귀양살이로 죄인을 먼 시골이나 섬으로 보내 일정 동안 이동이 제한되는 곳에서 살게 하는 사형 다음가는 형벌입니다. 사형에 버금가는 혹독한 형벌로 심신이 극도로 고달프게 된 유배 생활 속에서도 이들이 빼어난 문학 작품을 쓴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기념관에서 본 추사 김정희의 말에 답이 있습니다. 시련에 낙담하지 말고 성장하는 계기로 삼아라. 붓 천 자루와 벼루 열 개가 닳아 없어지도록 글을 쓰며 추사체를 이룬 김정희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기약 없는 낯선 유배지에서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정제된 고결함과 환원된 순결성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을 이들의 작품은 더없이 담백하고 순연합니다. 장소와 처지가 독이 아닌 약이 되어 창작열을 일으키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인문지리학자인 이-푸 투안은 그의 저서 ‘공간과 장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공간은 ‘움직임’이 허용되는 곳으로 생각한다면, 장소는 ‘정지’가 일어나는 곳이 됩니다. 장소는 허기 갈증 휴식 출산 같은 생물학적 욕구가 충족되는 ‘가치의 중심지’입니다’.


유배지는 장소이며 정지가 일어나는 곳입니다. 위리안치의 정지된 장소에서 다산과 추사는 예술·창작에 대한 허기·갈증을 가치·몰입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버림 속에서 스스로 나아간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우리의 삶은 더 고단해졌습니다. 생의 위기와 고난 앞에 우리는 거듭거듭 유배자가 됩니다.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이 또한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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