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끼니] 콩국과 콩물, 그리고 소금과 설탕?
한반도는 그렇게 큰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같은 음식을 두고 먹는 방법에 차이가 뚜렷한 경우가 더러 있다. 이 또한 음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역성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순대를 어디에 찍어 먹느냐는 문제다. 부산을 비롯한 경남에서는 막장에 찍어 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소금에 찍어 먹는다. 강원도와 충청도, 경북 일부 지역에서는 새우젓에 찍어 먹는다. 그나마 이건 좀 익숙한 조합이라 적응하기 쉽다. 그런데 전라도에서는 초고추장에, 제주도에서는 간장에 찍어 먹는다. 호불호를 떠나 문화적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 지역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타지역 사람에게는 매우 낯선 경험으로 다가온다. 나는 이런 지역성이야말로 한국 음식의 다양성을 위해 꼭 지켜져야 할 전통이라 생각한다.
그나마 순대는 좀 나은 편이다. 어디에 찍어 먹는다 한들 순대 본연의 맛은 변하지 않고 찍어 먹는 장은 순대 맛을 거들 뿐이니 고정관념을 조금만 버리면 어딜 가든 충분히 적응 가능한 사안이다. 그런데 좀처럼 적응 안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콩국 간을 소금으로 하느냐 설탕으로 하느냐의 문제다. 단순히 지역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극단적인 차이고 소금이냐 설탕이냐에 따라 콩국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타협이 쉽지 않다.
콩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 특히 서민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애용되어 왔다. 특히 콩즙에 소금 간을 하고 면을 말아 먹는 콩국수는 체력 소모가 많고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철에 요긴한 보양식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은 다 귀한 자에게로 돌아가 버리고 가난한 백성이 얻어먹고 목숨을 잇는 것은 오직 이 콩뿐이다’고 전제한 뒤 ‘맷돌에 갈아 정액만 취해서 두부로 만들면 남은 찌끼도 얼마든지 많은데 끓여서 국을 만들면 구수한 맛이 먹음직하다’고 콩의 이용법을 설명한다. 궁중이나 반가에서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잣국수 같은 고급 음식을 즐겼지만 백성들은 콩국수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콩국수의 맛과 영양만큼은 결코 잣국수에 뒤지지 않는다.
심지어 콩국수는 그 강한 생명력 덕분에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름철 별미로 사랑받는다. 그런데 이 콩국수에 아주 중요한 딜레마가 바로 콩국수의 간을 설탕으로 하느냐 소금으로 하느냐는 문제다. 설탕으로 간을 하는 쪽에서는 소금으로 간을 하는 쪽을 무시하고, 소금으로 간을 하는 쪽에서는 설탕으로 간을 하는 데에 경악한다. 대체적으로 호남이 설탕을, 영남을 비롯한 그 외 지역이 소금을 선호한다. 나는 이걸 처음에는 호남이 풍족하게 살던 시절의 흔적이라 생각했다. 설탕이라는 조미료가 가지는 상징성 때문이다. 한때 설탕은 명절선물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요긴한 조미료였다. 이걸 국수 간을 내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건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최근에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더 발견했다. 콩을 불리고 삶아서 갈아낸 즙을 호남지역에서는 ‘콩물’이라 부르고 영남지역에서는 ‘콩국’이라 부른다. 콩물이나 콩국이나 본질은 같은 음식이다. 하지만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용도와 접근 방식이 달라진다. 언어가 그래서 무섭다. 물은 설탕을 타서 달게, 국은 소금을 타서 짜게 먹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접근법이다. 대중의 언어습관이 음식의 실체를 만든 것인지, 음식의 실체가 대중의 언어를 규정한 것인지는 조금 더 따져볼 일이다. 일단 지금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콩물은 설탕, 콩국은 소금이 원칙이다.
부산 출신인 나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이제 순대는 어디에 찍어 먹어도 기꺼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콩국수만큼은 아직은 소금으로 간을 해야 한다. 달콤한 콩국수는 여전히 어색하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