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84> 벗이 오면 거위를 잡고 작설차를 달인다는 17세기 시인 이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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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니 정이 늘고 병드니 잠이 많아(老慣人情病慣眠·노관인정병관면)/ 전원에 지내며 천성대로 즐거이 사네.
/ 마을의 벗이 갑자기 오면 거위를 잡고(村朋卒至鵝頭挈·촌붕졸지아두설)/ 산중의 객이 때대로 오면 작설차 달이네.
친구는 큰아들을 보곤 반가워하며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른 다 됐네. 빨리 장가가라"고 했다.
친구 형님이 1년 전 검두마을에 귀촌해 형님 댁에서 제사를 모시므로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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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無心關事是眞便·무심관사시진편
늙으니 정이 늘고 병드니 잠이 많아(老慣人情病慣眠·노관인정병관면)/ 전원에 지내며 천성대로 즐거이 사네.(田園守拙樂吾天·전원수졸락오천)/ 마을의 벗이 갑자기 오면 거위를 잡고(村朋卒至鵝頭挈·촌붕졸지아두설)/ 산중의 객이 때대로 오면 작설차 달이네.(山客時來雀舌煎·산객시래작설전)/ 도를 알지 못한다 해서 근심하지 않고(有道莫知非所患·유도막지비소환)/ 세상사에 무심하니 참으로 편안하네.(無心關事是眞便·무심관사시진편)/ 한가한 중에 좋은 경치 즐겨 기뻐하니(閑中自喜耽佳景·관중자희탐가경)/ 근래에 또 새로 지은 시가 백 편은 되리라.(邇日新詩且百篇·이일신시차백편)
위 시는 시인 이응희(李應禧·1579~1651)의 ‘우연히 짓다(偶題·우제)’로, 그의 문집인 ‘옥담유고(玉潭遺稿)’에 있다. 왕실 후손인 그는 평생 처사로 전원생활을 하며 시 짓기를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의 시가 1000수 이상 남아 있다. 그의 저서는 ‘옥담유고’와 ‘옥담시집’이 남아 있다. 이 연재 글 199회에서 이응희의 시 ‘한가한 마음(閑情·한정)’을 소개했다. 전원에 살더라도 왕실 후손인 그와 필자의 삶의 방식이 다르겠지만, 위 시가 마음에 닿아 소개한다.
서울에 사는 큰아들이 엊그제 밤에 와 그제 이곳저곳 구경 다녔다. 저녁에 집으로 오면서 화개면 검두마을에 가 오랜 친구 정태도를 만났다. 필자가 부산 기장 마방지마을에 살 때 친구였다. 친구는 인정이 참 많다. 여전했다. 거위가 아니라 소도 잡아 줄 친구다. 함께 돼지도 잡아 먹곤 했다. 친구는 큰아들을 보곤 반가워하며 “그때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른 다 됐네. 빨리 장가가라”고 했다. 자식들 다 출가시켰다고 했다.
그날이 친구 어머님 기일이었다. 친구 형님이 1년 전 검두마을에 귀촌해 형님 댁에서 제사를 모시므로 온 것이었다. 잠시 친구를 만나고 돌아왔다. 필자가 당시 농사짓던 친구를 소재로 지은 시 ‘정태도 하우스’가 방에 걸려 있다. 그 시를 읽으면서 당시를 회상했다. “흙을 부리는 사람 정태도, 내 친구/ 불현듯 보고 싶어 하우스에 들렀을 때/ 불가마 속에 곱게 자란 열무 뽑고 있었다 … 열무단 손에 쥐고 어적어적 배웅 나오는 네 움직임/ 그날 풍경의 으뜸 주인이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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