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몰래출산 가능하면 아기 안 버릴까

기자 2023. 7. 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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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서 발견된 영아 시신들, 야산에 몰래 묻혔다는 신생아, 온라인으로 사고팔리는 아기들. 경악스러운 뉴스가 연일 쏟아지며, 출생통보제가 지난주 전격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참에 보호출산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임신했지만 낳아 직접 기르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흔히들 불륜관계나 미성년자 임신 등 다소 극단적인 상황 속 사람일 것이라 추측하지만, 결혼관계 안에서나 성인 이후 출산에서도 영아살해나 아동유기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당장 죽고 버려지는 생명은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익명으로라도 출산하게 하자는 논의 역시 우리나라만의 고민은 아니다. 일본도 2021년 11월 한 민간 병원에서 행해진 비밀출산으로 사회적 격론이 있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해 온 일본 시케이 병원을 찾은 한 10대 여성은 병원 상담실장에게만 학생증 등으로 신원을 밝힌 채 의료진에게까지 비밀로 하고 아기를 낳았다. 신원을 밝히지 않겠다는 친모의 뜻으로 인해 아기는 일평생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가 누구인지 알 길을 잃게 되었다.

왜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에게 “친생부모를 알고 친생부모로부터 우선적으로 키워질 권리”와 “친생부모와 아동을 지원하고 차별하지 않을 책무를 이행하라고 국가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힘주어 명시하고 있을까. 그리고 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대한민국 정부에 “익명으로 아동 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해야 한다” “익명으로 출산할 가능성을 허용하는 제도의 도입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고려해야 한다”라고 권고했을까. 한 생명의 일생을 살아갈 최소한의 존엄과 근원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독일도 몰래출산이 아닌 ‘신뢰출산’으로 제도를 설계하여 운영하고 있다. 2009년 독일 윤리위원회는 베이비박스가 아동의 ‘뿌리를 알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했고, 이어 독일은 신뢰출산법을 제정했다. 임신 여성이 신뢰출산을 원하면 친모의 정보를 출신증명서에 적은 후 이를 밀봉한다. 신뢰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은 만 16세부터 출신증명서 열람권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 법의 진짜 취지는 익명출산 그 자체가 아니라 ‘상담과 지원’에 있다. 신뢰출산은 이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임신갈등상담소)을 통해서 진행되는데, 임신 여성은 별명으로 상담을 받는다.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전문 인력에 의해 진행되는 상담은 출산 후까지도 지속되며, 친모가 아동을 직접 양육할 수 있는 모든 지원 체계를 연결한다. 정 아이를 직접 기를 수 없다고 하는 경우 입양상담도 함께 진행한다.

낳기만 하고 직접 키우지 않아도 되면 과연 망설임 없이 아기를 출산할까. 익명출산제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에서도 영아살해와 아동유기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익명출산 상담조차 힘든 사람들, 밀봉되는 최소한의 개인정보마저도 남기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여성과 아동 중 누구를 더 보호할 것이냐는 식으로 단순화시킬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재생산권, 임신과 출산에 대한 비차별, 아동의 보편적 출생등록권, 아동이 친생부모에게 길러질 권리(최후의 수단으로 적법하고 안전하게 대체양육을 받을 권리)들은 연결되어 있고, 국가에 의하여 ‘모두’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임신여성이 혼인 여부, 나이, 국적에 상관없이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지원들을 어떻게 여성과 아이에게 닿게 할 것인가를 가장 우선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출산과 양육은 당위가 아니라 한 인생의 전인격적인 결단이기에, 그 결단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근본적 대책 없이 익명출산을 덜컥 도입하는 것은 본말전도이다. 뿌리를 모르고 자라나 ‘정녕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었다’는 사람에게 ‘그래도 살아는 있으니 다행’이라는 국가는 얼마나 잔인한가.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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