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 성공비결? 세계인 마음 속 ‘신명’을 풀게 해준 것”
- 탈춤·민속극 부흥운동 주제
- 조동일-채희완 두 학자 대담
- ‘한류의 미학적 분석’ 이어져
“누구에게나 ‘신명’이 있습니다. 신명을 가둬놓으면 속병이 돼요. 신명은 풀어야 합니다. 한류가 세계인의 호응·사랑·관심을 받는 이유는 (사회구조 등 어떤 이유로 갇혀 있거나 왜곡된) 그들의 ‘자기 신명’을 풀도록 계기를 마련해 준 데 있습니다. 이걸 잘못 생각해서 ‘한국 문화의 우수성’으로 해석하거나 한국 문화를 그들에게 이식하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절대 안 됩니다. 그건 신명을 파괴하는 짓입니다.”(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
㈔민족미학연구소(소장 채희완)와 한국민족미학회(회장 박준건)가 주최한 2023 춘계 학술발표회 ‘1970, 80년대 민속극 부흥운동의 전개 양상과 그 사회문화사적 배경, 그리고 생성미학적 접근’이 지난달 29일 부산대학교 인덕관에서 열렸다. 탈춤·민속극을 중심에 놓고 전개 양상을 짚으면서 그 부흥운동이 한국 사회·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어떻게 계승할지 의논한 ‘학술 잔치’였다. 전국의 미학자 연극학자 문화인류학자 예술행정가 마당극 이론가·실천가, 탈춤 연희자·보유자 등이 모였다.
첫 순서는 ‘민속극 부흥운동의 전사(前史) 회고 대담 : 조동일·채희완’이었다. 최고 석학 조동일 명예교수와 평생 부산을 거점으로 민족미학을 개척해 온 채희완 소장의 대담은 단연 관심을 끌었다. 조 명예교수는 미학의 철학 원리·미학 원리를 강조하며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청중과 토론했다. 그 과정에서 창조주권론·대등론·생극론·대등생극론·만물대등론 등 미학·철학 원리를 제시했고 급기야 한류·K-컬처·BTS까지 이어졌다.
조 명예교수는 지금의 세계를 아우를 예술원리로 ‘창조주권론’을 제시했다(유튜브 채널 ‘조동일 문화대학’참조). “누구나 창조할 주권을 지녔다”는 원리다. 지위고하·상하귀천도 없다. 신명 또한 예술적 창조권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 창조주권은 사람 각각 ‘상이하게’ 지녔다. 이걸 발현하는 게 창조주권인데, 이를 뒷받침하는 철학 원리가 ‘대등론’이다. “사람은 누구나 대등하다”는 뜻이다.
“평등론과는 달라요. 평등론은 사람은 모두 가지런히 평등해야 한다는 것인데 실상 사람에게는 다름·차이가 있습니다. 무리하게 평등론을 펴면 정치적 폭력도 개입하게 됩니다.” 조 명예교수는 “대등론은 다름을 인정합니다.” 서로의 필요·처지·관점·역량에 맞게 가는 ‘대등’으로 이해됐다. 서양 근대예술은 창작·공연·감상을 완전히 분리해 위계를 만들어 지금까지 온 반면 “대등론의 예술창작에서는 창작·공연·감상 행위가 대등하다”는 설명이다. 청중도 창작자와 대등하게 작품에 개입하는 일이 ‘당연하다’는 뜻이다.
채희완 소장의 질의에 답하면서 조 명예교수는 한국 탈춤에 그런 미학 원리가 있음을 들려줬다. 야외 마당에 있는, 사방이 객석인 무대에서 연행자와 청중이 활발하게 상호작용해가며 공연을 함께 완성해 가는 탈춤 장면이 떠올랐다.
여기에 ‘생극론’이 보태져 결국 ‘대등생극론’으로 올라선다. “생극은 조선 시대 화담 서경덕 선생도 기록한 오래된 개념”이라며 그는 고대 그리스연극의 카타르시스 이론과 인도 연극의 라사 개념을 비교했다. 카타르시스는 서로 싸우는 상극 원리로 돌아가고, 라사는 ‘싸웠는데 알고 보니 상대방도 좋은 사람이더라, 싸움은 오해 탓이었다. 그래서 원만하게 화합했다’는 상생 원리로 움직인다.
“탈춤을 보면, 상극과 상생이 다 있습니다. 앞과 끝에서 다 같이 어우러져 노는 상생이 있되 중간에 양반-말뚝이 싸움 같은 상극의 탈놀이가 있죠. 두 가지가 하나 되는 철학, 생극입니다. 탈춤의 (미학·철학적) 원리입니다.” 조 명예교수는 “미학은 철학 원리로 설명하지 않으면 그냥 미사여구일 뿐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선 시대 양반 엘리트층이 '연극' 장르에는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탈춤에 '신명'이 그대로 남았다고 설명해 관심을 끌었다.
어린 시절 고향인 경북 영양군 주곡리 주실에서 지체는 가장 낮았으나 탁월한 상쇠이자 소리꾼으로서 마을에 큰 영향력을 끼친 분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그는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 농촌마을을 마치 ‘지옥’처럼 인식했지만 당시 농촌의 한쪽 면만 본 것이다. 결속된 공동체에서 어우러져 살았던 이런 면모를 그는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류는 ‘한국 문화가 잘났다’ ‘한국 문화를 이식한다’는 접근은 절대로 안 되며 ‘그들이 자기 신명을 풀도록 하는 대등론과 창조주권의 확산’을 말했다.
조 명예교수는 “현재 한국에서는 신명을 받아 안을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대도시나 너무 작은 마을은 어려움이 있고 적당한 인구를 가진 중소도시에서 자기 전통을 재현하면서 그 마을에 뿌리박고 정통한 사람이 주도하는 대동놀이 공동체를 이루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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