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다시 오른 대관령에서
학기 중 도시에서 살다가 방학을 맞아 다시 대관령으로 가느라 가방 몇 개 주섬주섬 쌌다. 사는 게 그렇듯 짐 싸는 것도 꼭 남거나 모자라는데 대체로 둘 다다. 어느 건 모자라고, 어느 건 남는다. 특히 책이 남는 편인데 갈 때는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들을 읽을 요량으로 이 책 저 책 욕심껏 넣지만 막상 가서 다 읽은 적은 거의 없다. 매번 그러지만 이번에도 아마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또 덜어내기보다 추가하는 손이다.
다시 오른 대관령, 바야흐로 푸름의 제국 전성기다. 하늘 아래 푸르지 않은 구석 찾아보기 힘들고, 푸름의 기상도 더할 바 없어 보인다. 시골 사람들 말이, 나무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3년은 걸린단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 도시와 대관령을 오가는 생활이 1년6개월째, 아직 나무 제대로 볼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나무를 구분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다 이렇게 잎사귀 피고 열매가 맺히면 아, 이게 대추나무요 저게 밤나무구나 한다. 아직 열매가 제 모양 갖추지 않은 상태지만 그래도 구분할 정도는 된다. 무엇보다 울창한 전나무 숲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많은 문제가 자명하고 단순해진다. 하지 않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에 관한 판단은 이곳 대관령에 있을 때 훨씬 자명해진다. 앞으로 전진만 할 줄 알던 지난날 과부하로 건강을 해치고 지친 육신을 여기 대관령에 의탁했다. 대관령은 책 보는 것도 좋지만 산을 더 공부하란다. 그래서 이렇게 걸음걸음 옮기며 온갖 나무며 풀과 이야기를 나눈다. ‘힘들다, 힘들다’하면서도 지금은 쉴 때가 아니라며 채찍질하던 나더러 이대로도 충분하다며 마음 편하게 쉬란다. 다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초록 짙은 너른 벌판을 달리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라고. 지금 따져보면 부족한 것 투성이인 시골 생활이었지만 그 당시 부족한 게 있었냐고. 거꾸로 지금은 부족한 것 없는 생활이면서도 늘 모자라 하지 않느냐고.
대관령 생활하면서 또 다른 경험을 했다. 같은 쇼팽인데 깊은 밤에 들을 때와 햇살 맑은 아침에 들을 때가 아주 다르다. 밤에는 피아노 한 음 한 음에 매달리며 쇼팽은 어떤 마음으로 이런 곡을 썼을까? 하고 어떤 슬픔과 막막함으로 헤아리곤 한다. 그런데 아침에 들리는 쇼팽은 평화롭기만 하다. 지난밤 짙은 농도의 우수는 사라지고, 아침 햇살에 빛나는 맑은 이슬 구르는 소리만 들려온다. 음악조차 그럴진대 세상일 그렇지 않은 게 뭐가 있을까? 지금 눈에 불안해 보이는 것도 때가 바뀌면 불안의 기색은 다 사그라지고 말리라. 지금 무겁게 들리는 소리도 때가 되면 가벼워지리라. 마음 가라앉자 가방 풀어 가져온 책들을 정리한다. 오늘만큼은 읽어야 할 논문들 잠시 미루고 꼭 읽고 싶었던 책과 함께 쇼팽의 선율로 대관령의 새벽을 맞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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