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창조는 저항이다
챗GPT나 AI(인공지능) 예술이 등장하면서 인간만의 창의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AI는 인류가 생산해온 수많은 예술작품, 이론, 사유의 흔적들을 종합해서 꽤 멋들어진 문구들, 그림들, 소리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학자든 예술가든 우리 인간이 작업하는 방식도 사실은 그와 다르지 않다. 이전 세대, 수많은 선행자의 작업들을 읽고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습과 경험을 켜켜이 쌓아가는 것은 AI 작가나 인간 작가가 공통적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다. 자동화된 기계가 지난한 인간의 노동을 효율적으로 대체한 것처럼 오늘날 가장 발달된 기계인 컴퓨터는 한 평생의 (아니 '온 인류의'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 학습을 순식간의 프로세싱으로 대체한 것뿐 그 과정의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아직까지는 AI 그림이 사소한 오류들을 심심치 않게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다가오는 시간 앞에서 이미 AI 대 인간, 이들 대결의 결과는 명백한 것처럼 보인다.
반전은 AI와 인간의 작업이 갈리는 지점에 있다. 창작을 위한 준비과정이 아니라 실제 행위가 이뤄지는 순간 기계와 인간은 분명히 구별되기 때문이다. AI 기계의 창작은 학습과정과 동일한 기계적 행위의 연속선상에 있다. 하지만 진정한 창조는 단절로부터 오는데 이것은 인간만의 능력이다. 예술가나 학자는 자신이 쌓아온 감각, 경험, 지식 속에서 창조의 잠재력을 키우는데 이 힘은 그들을 스스로가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는 순간으로 이끈다. 잠재성이 현실로 이동하는 힘을 만드는 것이다. 실현을 이루는 원동력, 그것은 우리가 곧잘 다이내믹(dynamic)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왔다. 그는 잠재된 채 순간에 멈춘 듯 보이는 것이 시간 속에서 움직임과 연결되는 상태의 변화를 잠재태(디나미스·dynamis)와 현실태(에네르게이아·energeia)로 나눠 설명했다. 잠재적인 역량과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힘(에너지)의 조합이 세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AI와 인간의 차별화는 바로 이 잠재성의 실현행위에서 이뤄진다. AI에 현실화의 힘(에너지)은 알고리즘에 의해 정해지며 이는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다. 인간에게 이 힘은 창조를 부르지만 스스로 그 권력의 주인이 돼야만 의미가 있다. 쓰지 않을 수 없고, 그리지 않을 수 없고, 만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펜이나 붓을 들지만 아무 갈등 없이 기계적으로 능력을 발휘한다면 그것은 노동기계의 생산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진정한 창조자는 행위의 순간, 현실화의 힘에 완전히 굴복하기보다 그에 저항하며 그것이 지시하는 길과 다른 길을 택함으로써 주인됨(주체성)을 증명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질 들뢰즈가 창조행위는 일종의 저항행위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체성은 아무 생각 없이 명령을 따르는 게 아니라 정해진 것이나 기대되는 것에 저항하는, 무위(無爲) 또는 행위의 중지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다. AI와 인간의 대결이 어둡지만은 않은 이유다. 피카소가 사물을 진짜같이 그리는 방법을 몰랐겠는가. 그는 모두가 택했을 법한 결말에 저항했다.
하지만 AI는 새로운 선택을 에러로 인식할 것이 분명하다. 주체적으로 무능력을 선택하는 것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창조다. 이미 존재한 것의 학습을 통해 확률적으로 최선의 길을 따른 작품은 결국 그때까지 존재하던 것의 종합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물은 완벽하지만 감동이 없거나 화려한 레퍼런스를 가졌지만 신선한 깨달음을 주지 못할 것이다. 물론 창조자의 저항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대한 창조는 실패를 거쳐 결과를 예상치 못한 가운데 탄생해왔다. 저항과 단절의 행위로부터 예술은 새로운 시대의 전환점을 표시한다
남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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