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규제 다른 길 가는 美·유럽, 답은 명확하다

2023. 7. 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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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럽연합 탄생 30주년
산업기반 악화로 경제성장 저조
혁신보다 미국기업 방어에 '급급'
규제 중심 유럽 방식으론 한계
美 규제 법안 폐기 거울 삼아야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유럽연합(EU)이 탄생한 지 올해로 30년이다. 유럽연합이 출범하기 전에도 1952년의 유럽석탄철강공동체와 1957년의 유럽경제공동체 등 유럽 내 여러 나라가 함께 번영을 도모한 바탕이 있긴 했지만 유럽연합의 의미는 특별하다. 유럽연합 출범과 같은 해에 유럽 단일 시장이 열렸고, 2002년에는 유로화가 공식적으로 일반 통용되면서 유럽연합은 명실공히 세계 최대 경제적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현재 유럽의 경제 상황을 보면 번영을 향한 동력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는 수치로 드러난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유럽연합의 경제 규모는 16조2000억달러로 미국의 14조7000억달러보다 컸다. 그런데 2022년 미국의 경제 규모가 25조달러로 확대된 데 비해 유럽연합은 19조8000억달러 수준에 그쳤다. 미국이 유럽연합 경제 규모보다 3분의 1 가까이 더 큰 것이다. 영국을 제외하고 보면 미국 경제가 유럽연합보다 50% 이상 크다. 이런 수치들은 유럽연합 외교협의회가 유럽연합의 힘이 약화되고 미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우려하며 내놓은 자료에서 밝힌 것이다.

유럽의 저조한 경제 성장은 산업 기반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유럽이 오랜 역사 덕분에 관광업이나 사치재 시장에서는 여전히 경쟁력이 있지만, 경제 규모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정도로는 충분치 않은 것이다. 특히 미국 기술의 유럽 지배는 안쓰러울 지경이다. 유럽에서 말하는 ‘빅5’, 즉 알파벳(구글), 아마존, 애플, 메타(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유럽 내 영향력은 해당 회사들이 미국 시장에서 갖는 지배력만큼이나 크다.

그런데도 유럽은 적극적으로 성장과 혁신을 추구하기보다 미국 기업의 세력 확대를 방어하는 데만 급급하다. 대형 플랫폼 기업이 각 나라에서 올린 매출에 세금을 물리는 ‘디지털세’가 유럽연합 주도로 신설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에 해당하는 유럽연합 경쟁법 적용으로 지난 6년간 구글에 부과된 벌금만 해도 10조원 가까이 된다. 유럽연합은 최근 구글이 경쟁법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사업 일부를 매각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유럽연합이 글로벌 리더가 된 몇 안 되는 영역 중 하나는 규제 분야다. 작년만 해도 대형 플랫폼을 겨냥한 디지털시장법과 디지털서비스법을 연달아 통과시켰다. 이전에는 공정 경쟁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규제기관이 개입하던 방식이었지만, 이제는 특정 플랫폼 기업을 지정해 사전적으로 제한을 가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또 플랫폼들이 제공하는 콘텐츠와 광고를 규제하는데, 여기에는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틱톡이나 알리바바 같은 중국 기업의 서비스도 포함될 예정이다.

세계 기업들이 유럽연합의 규제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브뤼셀 효과’가 유럽연합의 힘인 것이 사실이다. 유럽의 인구와 구매력은 여전히 기업들의 관심을 모으기 때문이다. 예컨대 탄소중립을 내세운 유럽연합의 규제 주도를 한국 기업도 당황스럽게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탄소중립 정책이 듣기 좋은 명분을 빼면 유럽에 수출하는 기업들의 비용을 높여 힘들게 만들겠다는 의도 이상이 없어 보이는 것이 문제다. 가상자산의 경우도 유럽연합은 재빨리 법으로 규제부터 만들었다. 아무리 신박해도 규제로 성장을 일궈낼 수는 없다.

우리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앞서 언급한 유럽의 디지털시장법에 상응하는 규제가 미국에서는 무려 네 개의 법안으로 나온 바 있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리나 칸 미국 공정거래위원장의 야심 찬 노력에도 이들 법안 모두 회기가 만료돼 폐기됐다. 미국 의회가 잘나가는 자국 기업 발목을 잡을 리가 없다고 가볍게 넘기기에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결국 미국의 힘은 ‘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가 아니라 ‘뭐든 할 수 있게 용인하는 국가적 기조’에서 나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탄생한 지 올해로 300년이다. 나라의 부는 국민이 누리는 삶의 수준으로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로 만든 국부론의 출발점이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규제는 혁신을 저해한다. 치열하게 나아가도 여차하면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다. 벌써 유럽을 따르기에는 누려보지 못한 것이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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