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기회 박탈 vs 보험사기 수준' 발달지연 실손보험금 논란 여전
발달지연 실손보험금 두고 보험사·의료계 이견 팽팽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최근 현대해상화재보험이 발달 지연과 관련한 놀이·미술·음악 등 심리치료를 의원급·아동병원에서 '민간 놀이치료사'가 진행한 경우 실손의료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소아 청소년 치료전문가 등 의료단체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현대해상은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보험금 지급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의료단체들은 보험금 지급 거절 관련 문자를 의사의 진료권과 환자의 치료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보고 있어 갈등이 길어질 전망이다.
◆ 현대해상 "민간자격 치료사, 보험금 지급 근거 없어"
3일 보험업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현대해상은 지난달 1일부터 발달지연 관련 미술·심리·음악치료 등 치료에 실손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현대해상이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지난 2월, 한 소아과가 사무장병원·무면허 진료 행위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다. 해당 소아과가 수사로 인해 문을 닫자 5~10회분 등 일시불로 치료금액을 지불했던 부모들이 피해를 봤다. 현대해상은 일부 병·의원에서 발달지연 아동을 위한 '아동 재활센터'를 열고 실손보험금을 편취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곳들은 브로커를 끼고 설립한 심리발달 클리닉 등이다.
이에 현대해상은 의료인과 같은 의료기사로부터 받는 치료에 대해서는 실손보험금을 지급하되 민간자격증 치료사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대해상은 무면허자 치료행위 확인을 시행 하기 앞서 발달지연 치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의료기관에 사전 안내 공문 발송했다. 지난달에는 고객대상 알림톡을 발송하고 유예기간을 가졌으며, 6월 이후 치료건부터는 의료자격 면허 확인을 하고 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선량한 실손보험 가입자와 발달지연 아동과 그 부모님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현대해상의 발달지연 관련 보험금 미지급 관련 적정성, 지급심사 프로세스 등을 살펴보고 있다.
◆ 미술·음악치료사의 치료, 의료행위 포함 안 돼…관련 지급보험금 폭증
현대해상이 발달지연과 관련한 실손보험금 지급 기준을 높인 데에는 관련 지급보험금의 규모가 매년 급증한 영향도 있다. 현대해상의 발달지연 관련 지급보험금은 2017년 약 50억 원 수준이었으나 2021년에는 380억 원으로 4년만에 8배 가까이 늘었다. 5대 손보사(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메리츠화재)가 발달지연과 관련해 지급한 실손보험금도 지난해 1185억 원을 기록했다.
현대해상은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보험금 지급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의료법과 의료기사법에 따르면 의료인과 간호조무사, 의료기사가 의료행위이며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이 포함된다. 민간자격증을 취득한 미술·음악치료사의 치료는 의료행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발달지연 치료기관에서는 발달지연 아동을 대상으로 언어·인지·미술·놀이·특수체육·감각통합 등 치료의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 이 중 인지와 미술, 놀이, 특수체육은 국가자격증이 없어 대학원을 마치고 학회 등에서 발급하는 민간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센터에 취업해 치료사로 근무한다. 통상적으로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놀이·미술치료는 1회당 7만~10만 원 정도다.
현대해상은 오랜기간 R코드(발달지연 임시코드)를 부여받고 민간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에도 실손보험금 지급 심사를 강화했다. 통상 만 5세에 언어발달 종료 여부, 확정 진단 여부 등을 확인한다. 만 5세 이후라도 의료기관에서 R코드를 받았다면 보험금이 지급되지만, 이 경우가 아니라면 보험금 지급이 거절된다. R코드는 원인 질환이 확인되기 전까지 부여하는 임시 코드다. R코드로 치료받던 소아 환자가 신경병증, 뇌전증, 자폐스펙트럼 등 원인 질환이 확인돼 새로운 코드를 받게 되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 "환자의 치료 기회 박탈하는 행위" 의료단체 강력 반발, 당분간 갑론을박 이어질 듯
소아청소년과 의사들로 구성된 의료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가 영유아검진사업을 도맡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영유아 발달지연을 조기에 진단, 치료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아 청소년 발달지연·장애 치료전문가 단체는 지난달 27일 서울 이촌동 의사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현대해상이 소아·청소년 환자 보호자들에게 발달·언어 지연 치료 등에 대한 보험금 거절 관련의 문자를 보낸 것에 사과를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현대해상은 의학적 치료 근거가 부족한 문건을 배포해 의료인의 진료권을 훼손하고, 발달지연 아동의 가족들에게는 치료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며 "비슷한 문건이 또 배포되면 이를 막는 관련 법적 조치와 함께 현대해상 어린이 보험상품 불매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또 "현대해상이 어린이보험 상품을 구성하면서 R코드 질환에 대해서만 보험금을 지급한다"며 "이는 이 회사의 재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한 아동병원협회 등에 따르면 최근 기준 발달지연 아동 수는 30만 명이고, 이 가운데 자폐스펙트럼 아동 수는 3만5000여 명이다. 발달지연과 장애가 있는 소아 청소년은 조기 진단을 통해 초반에 적극적인 개입 치료를 해야 하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동안 어린이 보험에 가입한 보호자들은 실비를 보전받는 방식으로 비용을 충당했으나 최근 보험사들이 이를 거절하면서 치료비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형사고소와 집단소송 움직임으로도 번지면서 당분간 발달지연 보험금과 관련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도 일부 커뮤니티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발달지연은 언어·대근육·소근육·사회성·자조 등에 대한 유기적 치료가 필수적인데도 보험사가 기본적인 이해 없이 보장을 줄였다는 것이다. 한 네이버 카페 가입자는 게시글을 통해 "현대해상에서 2년 동안 실비 청구를 받아오다 갑자기 언어치료 실비를 못 받게 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영애 한국아동놀이치료심리상담협의회장은 "놀이치료는 영유아와 아동의 발달, 심리·정서·사회적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아동상담 관련 전공을 수려하고, 다년간의 임상 수련을 거쳐 자격을 갖춘 자가 실시해야만 하는 전문 심리 상담 영역"이라며 "영유아와 아동의 정신건강과 발달 재활을 위해 헌신하는 놀이치료사의 존재를 부인하는 방침에 유감"이라고 말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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