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사라진 역사, 사라질 역사
톈안먼 등 불리한 진실은 지우고
동북공정 통해 이웃 역사 왜곡도
‘反간첩법’ 발효… 통제 강화 나서
중국에서 최근 3000여년 전 역사를 다룬 책 한 권이 파장을 일으켰다.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리숴(李碩)가 쓴 ‘젠상’이란 제목의 책으로 중국 고대국가 하상주 중 하나인 상나라(기원전 1600∼기원전 1046년)의 인신공양을 다뤘다. 제목은 ‘상나라를 멸하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영어 제목은 ‘폭로(Revelation)’다. 6000여년 전 창장(長江·양쯔강)과 황허(黃河) 유역에서 벌어진 인신공양의 초기 출현 과정에 이어 정점이었던 상나라 때의 잔인한 실태를 상세하게 서술했다.
리숴는 상나라의 인신공양이 은폐된 이유를 위정자들의 의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공자도 이 같은 사실을 알았지만 은폐에 동참했다고 추측해 파장이 일었다.
상나라를 무너뜨린 주나라(기원전 1046∼기원전 771) 위정자들은 갑골 비문을 파괴하고 상나라 귀족들이 역사를 쓰는 것을 금지하는 등 상나라 문화를 제거했다. 주나라에 인신공양 풍습이 확산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또 상나라 집권 시 주나라 사람들이 제물로 바쳐진 치욕적인 역사를 감추기 위해 은폐에 나선 것으로 분석했다.
지배 권력을 이용해 3000여년 전 상나라의 역사를 지운 주나라처럼 현재 중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이 불리한 역사는 은폐하고, 의혹을 제기하거나 비판을 하는 ‘역사적 허무주의’에는 날을 세우고 있다.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을 강조하며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대표적이다. 1989년 6월 4일 대학생과 지식인 중심의 중국인들이 민주개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자 중국군이 유혈진압에 나서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서 톈안먼 사태는 사라졌다. 톈안먼 사태에 대한 중국 공산당은 “엄중한 정치 풍파로 일찌감치 정론(定論·사안에 대한 확정된 입장이나 결론)이 나온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포털사이트 바이두 등에선 ‘톈안먼 사태’ 등을 검색하면 ‘관련 결과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나온다.
최근 일로는 코로나19가 있다. 지난해 말 중국의 급박한 위드코로나 전환으로 수많은 감염자가 발생했고, 사망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얼마나 피해가 발생했는지 알 수 없다. 화장한 시신의 지난해 4분기 통계를 발표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피해는 외면한 채 “중국의 코로나 방역은 영웅적이었다”고 공산당의 통치력을 높이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
은폐뿐 아니다. 외국과 관련된 역사 역시 왜곡한다. 6·25전쟁에 대해 중국은 북한의 남한 침략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란 입장만 펴고 있다. 1950년 조선에서 내전이 발생했고, 미국이 공공연히 군대를 파견해 조선을 침략했다는 것이다.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압록강변까지 쳐들어와 북한을 도우려 그해 10월 중공인민지원군이 참전했다고 주장한다. 동북공정 등을 통해 고구려, 발해 등을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이 왜곡하고 은폐하던 역사는 그나마 외부인들에 의해 의혹이 제기되면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젠 그마저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개정 반(反)간첩법(방첩법) 때문이다. ‘국가안보와 이익에 관한 문건·데이터 등에 대한 정탐·취득·매수·불법 제공’ 시 중국 내 외국인과 외국인과 교류하는 중국인들은 간첩이 될 수 있다. 명확한 기준도 없이 중국 공산당이 자의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왜곡된 역사만이 남을 우려가 커졌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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