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꾸는 게 능력…그 배경음악
요즘 시대에 누가 블로그를 보나 싶지만, 여전히 기다리는 블로그의 업데이트가 있다. 철학자 지니의 블로그다. 나는 그를 서브컬처 마니아인 친구 오다록의 추천으로 알게 됐는데, 이후 내 주변은 모두 지니의 팬이 돼버렸다. “누군가 철학을 꼭꼭 씹어 뱉어낸 모양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이 생김새가 그대로 남아 있어 신기하다. 정답이 없는 문제지만 자기만의 해답을 가진 사람의 글은 늘 흥미롭다.” 사람들이 지니를 좋아하는 이유다.
최근 그가 출판사와 책을 내기로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동거하는 애인 외에 10년 넘게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참고로 그의 블로그엔 ‘고독’이란 단어가 844번 언급된다.) 이제 세상에 나오기로 결심한 걸까. 직접 만난 그에게서 들은 재미난 사실은, 그가 책 17권을 낸 정지우 작가의 첫 번째 저서 띠지에 추천사를 쓴 사람이라는 거다. 주변 사람들이 책을 내고 유명해지는 동안 그는 익명의 블로거로 지냈다. 외롭진 않았을까.
“죽고 나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했어요. 살아 있을 때 평가받으면 사람이 변하는 게 있을 테니까요. 저에게 중요한 건 제 재능을 끝까지 다 펼치는 건데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걸 못할 수도 있잖아요.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 다른 길로 빠질 수도 있고요. 돈을 벌려 한다든지.”
그걸 권장하는 세상 아닌가? 대중적이어야 한다. 팔려야 한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재능을 끝까지 펼쳤을 때 어떤 모습일지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자기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처럼 느껴진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 모습 전체가 아니라, 그 부분을 사랑하는 거예요.” 그 부분이 뭐냐고 묻자, 재능이라고 했다. 철학적 재능. 옆에 있던 애인이 거들었다. “사실 저희는 나약한 사람들이에요. 세상이 제시하는 어떤 관문도 제대로 통과한 적이 없죠. 운전도 못하죠, 어릴 때부터 집단에 소속해 지내는 것도 힘들었어요. 세상을 살기엔 강하지 못한 면이 있었는데, 하지만 그런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이 있잖아요. 그게 통했던 것 같아요.” 나 역시 사회가 어려운 사람으로서 그게 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저도 어릴 때는 사람에게 기대를 많이 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외부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버렸죠. 제가 쓴 것 중에 ‘외로움은 능력의 결핍에서 발생한다’는 글이 있어요. 외로움은 자기 마음의 문을 열어놓는 상태라서 누가 들어오기를 바라요. 반면 고독은 닫아놓고 자족하는 상태죠. 문을 열어놓으면 고통스러운데 닫아놓으면 달콤해져요.”
자기 안에 영감이 충분한 자는 고독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그렇게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꾸는 게 능력이라고 했다. 능력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고 묻자, 능력을 키울 수도 있고 팀플레이를 할 수도 있단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모임을 자주 하는 걸까.
강한 사람이 쓰는 자기계발서보다 약한 사람이 쓰는 기분관리법이 더 궁금한 건 내가 약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철학은 그런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닐까. 지니의 첫 책을 기대해본다.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철학하는 블로거 지니의 플레이리스트
(블로그 주소 https://blog.naver.com/afx1979)
❶요루시카의 <히치콕>
https://youtu.be/t7MBzMP4OzY
노래 가사에 니체와 프로이트가 나오다니. 요루시카는 가사가 철학적이라 특히 좋아하는 그룹이다. 유튜브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다. 가사도 철학이 될 수 있다.
❷<테라스 하우스> 라이브 공연 영상
https://youtu.be/mKXPwVisYB0
‘일본판 하트시그널’ <테라스 하우스>에서 그룹 three1989의 쇼헤이가 하우스를 졸업하며 보여준 깜짝 공연 영상이다. 영상에서 보이듯 모두 울었고 나도 울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테라스 하우스>는 내 인생관을 바꿔놓은 프로그램이었다. 그 인생관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세 명 이상 같이 모여 살면 안 된다.
❸북튜버 <겨울서점> 채널
https://m.youtube.com/@winterbooks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김겨울 작가의 <겨울서점>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 같은 곳이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작가 추천으로 읽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김겨울 작가는 최근 철학과 대학원생이 되어 더욱 애정이 가는 작가이자 북튜버다. 책과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지만 그가 있는 한 나는 외롭지 않을 것 같다.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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