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속에 겁없이 뛰어드는 ‘불사조 척후병’ 파이어 드론
외장재 폴리이미드 재질 특수물질
구멍으로 공기…강력한 ‘내열성’
열 화상 카메라 탑재, 정보 습득
소방관들보다 먼저 뛰어들어가
빠르고 안전한 구조와 진압 기대
# 가마솥처럼 생긴 화로에서 높이 2m는 돼 보이는 거센 불기둥이 치솟는다. 일상에선 좀처럼 목격하기 어려운 거친 불꽃이다. 보통 이 정도 불은 화재 현장에서나 볼 수 있다. 이때 공중 저편에서 소형 무인기(드론) 한 대가 나타난다. 그러더니 화로를 향해 접근한다. 프로펠러 4개가 달린 헬기 형태의 무인기다.
이 무인기는 잠시 제자리 비행을 하는가 싶더니 활활 타오르는 불 속으로 자신의 몸을 획 던진다. 마치 자폭이라도 하는 듯한 비행이다. 당연히 고장과 파손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무인기는 몇초 뒤 멀쩡한 상태로 불길을 유유히 통과해 정상 비행을 이어간다.
이 장면은 화재 현장용 특수 무인기를 개발한 스위스와 영국 공동연구진이 최근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의 일부다.
연구진은 불에 타지 않는 이 새로운 무인기가 향후 소방관들보다 화재 현장에 먼저 진입해 불이 어디서 가장 강하게 타오르는지, 가장 위험한 곳은 어디인지와 같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와 화재 진압을 지금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 내부 공기층 ‘강력 단열’
스위스 엠파연구소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대 소속 과학자들은 최근 활활 타는 불길 속에서도 거뜬히 정상 비행할 수 있는 무인기인 ‘파이어 드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인텔리전트 시스템스’ 최신호에 실렸다.
파이어 드론은 성인 한 명이 한 팔로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덩치를 지녔다. 높이가 약 50㎝다. 프로펠러 4개가 달린 헬기 형태의 무인기다.
겉으로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동체를 감싼 회색 시멘트 같은 느낌의 외장재다. 이 외장재는 ‘폴리이미드’라는, 내열성을 띤 특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연구진은 폴리이미드 내부에 아주 작은 구멍을 숭숭 뚫었다. 이 구멍에는 공기가 들어갔다. 공기는 강력한 단열재다.
공기로 인한 단열 성능은 이미 우리 일상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 한겨울에 ‘뽁뽁이’라고 부르는 에어캡을 창문에 붙이거나 솜이 충분히 들어간 점퍼를 입는 것도 모두 공기로 인한 단열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다.
폴리이미드 내부에 공기층이 들어간 파이어 드론의 외장재는 열을 차단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파이어 드론은 200도의 열에서 최소 10분을 견딜 수 있다.
보통 건물 화재 현장에서는 온도가 1000도까지 오른다. 하지만 무인기는 속도가 빠르다. 파이어 드론 정도의 내열성만 지녀도 동체가 심각한 손상을 입기 전에 불길에서 빠져나왔다가 잠시 뒤 불 속으로 다시 뛰어드는 식의 임무를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다.
■ “극한의 냉기 차단도 가능”
연구진이 파이어 드론을 만든 이유는 뭘까. ‘척후병’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다.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진화와 구조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건물 내부 구조가 어떤지, 어디서 가장 강한 불꽃이 나타나는지, 내부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등을 빨리 알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보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 화재 현장에 소방관이 직접 들어가기 전까지는 알기 어렵다. 연구진은 이럴 때 파이어 드론을 출동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연기가 꽉 찬 환경에서 파이어 드론이 소방관보다 먼저 들어가 열 화상 카메라와 센서를 작동시키며 화재 현장을 헤집고 다닐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게 전자장비를 보호한 채 불 속에서 비행하는 일은 내열 성능이 부족하기 마련인 일반 상용 무인기는 할 수 없다. 파이어 드론은 다르다.
파이어 드론에 들어간 기술은 무인기 외부의 온도가 내부로 치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극한의 열기뿐만 아니라 냉기도 막는다.
연구진은 “파이어 드론에 적용된 단열 기술을 응용하면 향후 극지방과 같은 매우 추운 환경에서도 정상 비행할 수 있는 또 다른 무인기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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