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으로 무너진 인간 내면 탐구 [고인을 기리며]

김용출 2023. 7. 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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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으로 소총을 겨누고 사주경계를 하며 병사들은 말없이 싸움터로 실려 갔다. 곧 적과 조우를 하겠지만, 어디서 언제 어떻게 전투를 벌이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별로 대단치도 않은 시시한 작전이 될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이 세상의 망각된 한쪽 귀퉁이에서 그들은 죽음의 놀이를 찾아가는 중이었고, 부슬비가 내리니 죽음이라는 개념이 훨씬 진하게 느껴졌다. 죽음은 빗물에 섞여 내리는지도 모른다."

특히 대표작 '하얀 전쟁'은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전후에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다룬 소설로, 작가 자신이 직접 영어로 다시 써서 미국에서 '화이트 배지(White Badge)'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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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겸 번역가 안정효 별세
참전 경험 쓴 대표작 ‘하얀전쟁’
‘은마는…’ 등 다수 소설 영화화
130권 달하는 번역서 출간도

“사방으로 소총을 겨누고 사주경계를 하며 병사들은 말없이 싸움터로 실려 갔다. 곧 적과 조우를 하겠지만, 어디서 언제 어떻게 전투를 벌이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별로 대단치도 않은 시시한 작전이 될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이 세상의 망각된 한쪽 귀퉁이에서 그들은 죽음의 놀이를 찾아가는 중이었고, 부슬비가 내리니 죽음이라는 개념이 훨씬 진하게 느껴졌다. 죽음은 빗물에 섞여 내리는지도 모른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후 돌아와 후유증에 시달리는 한기주란 인물을 중심으로 인간군상을 그린 장편소설 ‘하얀 전쟁’을 쓴 소설가 겸 번역가 안정효씨가 지난 1일 별세했다. 향년 82세. 유족에 따르면, 암으로 투병하던 고인은 이날 오후 3시쯤 서울 시내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후 돌아와 후유증에 시달리는 한기주란 인물을 중심으로 인간군상을 그린 장편소설 ‘하얀 전쟁’을 쓴 소설가 겸 번역가 안정효씨가 지난 1일 별세했다. 연합뉴스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베트남전 경험을 바탕으로 1985년 계간 ‘실천 문학’에 ‘전쟁과 도시(하얀전쟁)’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영자신문 ‘코리아 헤럴드’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가 군에 입대해 백마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그였다.

등단 이후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미늘’ 등 24권의 소설과 다양한 수필을 남겼다. 그는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에서 “글쓰기 인생에는 정년퇴직도 없다. 손가락을 움직여 상상력을 글자로 옮길 기운만 남아 있어도, 글쓰기 활동은 가능하다”고 썼다.

특히 대표작 ‘하얀 전쟁’은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전후에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다룬 소설로, 작가 자신이 직접 영어로 다시 써서 미국에서 ‘화이트 배지(White Badge)’라는 제목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소설은 1992년 정지영 감독의 연출로 안성기·이경영·독고영재·허준호가 출연한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하고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하얀 전쟁’ 외에도 고인의 작품 중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도 영화화됐다.

번역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문학사상’에 번역 연재한 뒤로 지금까지 약 130권에 달하는 번역서를 펴냈다. 1982년 존 업다이크의 ‘토끼는 부자다’로 1회 한국 번역 문학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광자 여사(충남대 명예교수)와 딸 미란, 소근씨가 있다. 빈소는 은평성모장례식장 8호실에 차려졌고, 발인은 3일 오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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