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수지 16개월 만에 ‘흑자’ 반전…‘불황형’ 우려도
반도체 경기 부진에 중간재 수입 줄어…대중국 수출은 13개월째 감소세
지난달 수출보다 수입이 더 가파르게 감소하며 월간 무역수지가 16개월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원유·석탄 등 에너지 수입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게 주효했다. 경기 부진 여파로 반도체나 철강 완제품 생산에 들어가는 중간재 수입이 줄었는데 이를 두고 ‘불황형 흑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무역흑자 지속 여부는 반도체 같은 주력 수출 품목의 글로벌 수요 회복 속도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았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6월 무역수지는 11억3000만달러(약 1조4904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부터 올 5월까지 무역수지는 15개월 연속 적자였다. 이는 1995년 1월~1997년 5월 29개월 연속 무역적자 이후 27년 만에 가장 긴 기간이었다.
이번 흑자 전환은 전년 동기 대비 수입 감소폭(-11.7%)이 수출 감소폭(-6.0%)보다 더 커진 영향이다. 우선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원유(-28.6%), 가스(-0.3%), 석탄(-45.5%) 등 에너지 수입(-27.3%)이 크게 줄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때 185억달러에 달했던 에너지 수입액은 지난달 99억9000만달러를 기록해 2021년 9월(99억달러) 이후 21개월 만에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밑돌았다.
경기 부진으로 다른 품목 수입이 감소한 점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지난달 반도체(-19.5%), 철강(-10.2%) 등 주요 중간재 품목 수입이 줄면서 에너지를 뺀 나머지 품목의 수입은 7.1% 감소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당초 예상보다 에너지 가격이 더 하락해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하는 시점이 앞당겨졌다”며 “반도체 경기 부진으로 수입이 줄고, 철강 단가가 하락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주력 수출 품목의 부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0% 줄었다. 지난해 6월 3.35달러였던 D램 고정가격은 1.36달러까지 하락하면서 메모리반도체(-38.8%)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유가 하락 영향으로 석유제품 수출도 전년 동기 대비 40.9% 감소했다.
15대 주력 품목 가운데 자동차(58.3%), 일반기계(8.1%), 선박(98.6%), 2차전지(16.3%) 등 7개 품목의 수출이 늘었지만 전체 수출 규모를 증가세로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역별로는 지난달 대중국 수출 감소폭이 19%로 연중 가장 낮았지만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중국 내 공장 가동률 부진과 자국산 제품 선호 현상으로 대중국 수출은 13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무역흑자 지속, 하반기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관건…경제기관들 ‘신중론’
산업연 “반도체 수출 줄 것”
미 고금리 기조, 회복 제한적
정부는 ‘상저하고’ 기대감
결국 올해 하반기 글로벌 반도체 경기 회복 수준이 향후 수출 반등에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11개월째 뒷걸음치고 있지만 지난달 수출액이 89억달러를 기록해 올해 들어 최대 규모를 달성하면서 수출 증가세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산업부는 “메모리반도체 감산 효과가 가시화되고, 고성능 서버에 쓰이는 DDR(D램의 일종) 수요가 확대하는 데 힘입어 하반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내 주요 경제기관들의 전망은 신중한 모습이다. 무역협회는 지난달 28일 올해 하반기 수출이 작년 하반기에 비해 3.1% 감소해 12억달러의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봤다.
무역협회는 “4분기부터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서겠지만 3분기 수출 감소세를 메우기에는 부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산업연구원도 하반기 수출이 5.2% 줄고, 무역수지는 60억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연구원은 글로벌 데이터센터 설비 교체와 신규 수요 확대에도 올해 하반기 반도체 수출이 12.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대내외 수출 환경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면서 경기 회복세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정부는 하반기로 갈수록 대외 여건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미국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고 중국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면서 반등 시점이 점점 늦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정부는 하반기로 갈수록 ‘수출 플러스’ 전환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월별 무역적자가 지난 1월 125억4000만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월 53억3000만달러, 3월 47억3000만달러, 4월 27억3000만달러, 5월 21억2000만달러로 점차 줄어들다가 이번에 흑자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7~8월에는 하계휴가 등 계절적 요인에 따라 일시적으로 무역수지 개선 흐름이 주춤할 수 있지만 이후 본격적인 흑자 기조와 함께 수출도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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