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더위’에도…일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

김세훈·전지현·김송이 기자 2023. 7. 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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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무더위 속 노동 환경은 열악
물·선풍기에 의존…폭염은 재난
“기온 33도, 도로 체감온도 40도”
냉방 휴게시설 구체적 제도 없어
“작업중지권, 현장에서 보장돼야”

기온이 34도를 웃돈 2일 오후 2시 서울 강동구의 한 공사장 내부는 열기가 가득했다. 작업반장이 아이스크림이 담긴 바구니를 작업자들이 모인 위층으로 날랐다. 공사장 한쪽에는 식염수통과 제빙기가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채운식씨(56)는 “오늘 같은 날씨에는 20분만 일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는 게 가장 고충”이라며 “식염수를 아침에 하나, 오후에 하나씩 챙겨 먹는다”고 했다. 그의 작업모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적절한 냉방시설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폭염은 재난이다. 지난달 19일 경기 하남의 한 대형마트 지하주차장에서 카트 정리 업무를 하던 김모씨(31)가 쓰러져 숨졌다. 당시 하남의 낮 최고기온은 33도로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행정안전부는 전날 폭염 경계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했다. 전날 체감온도가 35도를 웃돈 데 이어 3일까지 무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말을 맞아 해수욕장 등 피서 장소가 인파로 북적였지만 폭염에도 쉴 수 없는 노동자들의 고충은 커지고 있다.

김씨가 숨진 지 약 2주가 흐른 이날 방문한 주차장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해 보였다. 동대문구 소재 건물의 주차관리원 김모씨(69)는 3.3㎡ 남짓한 1인용 컨테이너에서 더위를 식힌다. 에어컨이 없어 탁상용 선풍기에 의존해야 한다. 김씨는 “여름에는 물을 많이 먹는 것 외에 방법이 없지만 물마저도 금방 더워져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 정도면 견딜 만한 편”이라고 했다.

땡볕에서 일해야 하는 야외주차장 안내요원도 폭염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강동구 한 대형마트 앞 도로에서는 밀짚모자를 쓴 주차안내요원들이 연신 형광봉을 흔들며 차량을 안내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이날에도 권모씨(38)는 회사 규정이라며 마스크를 코끝까지 올려 썼다.

도시가스 안전검침원과 배달라이더 같은 이동노동자들에게도 폭염은 고역이다. 도시가스 안전검침원으로 일하는 김윤숙씨(55)는 하루에 약 120가구를 방문한다. 그는 “그늘이 많은 계단 같은 곳에서 10분 정도 쉬는 게 최선이지만 그마저도 일이 밀려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 잘 쉬지 못한다”고 했다.

6년차 배달라이더 김정훈씨(41)는 “실제 기온이 33도라면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는 거의 체감온도가 40도 정도로 느껴진다”면서 “그렇다고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노동자로서는 덥거나 춥다고 일을 안 할 수 없다”고 했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9일을 기준으로 작년 104명이었던 온열질환자는 올해 149명으로 45명 늘었다. 박세중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부장은 “노동자 휴게시설에 대한 제도가 충분히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노동자가 지나친 폭염에는 작업을 쉴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세훈·전지현·김송이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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