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 “맑고 순수한 ‘신병 캐릭터’ 때 묻은 제가 잘할까 고민”
전쟁 속 나무 위 피신한 군인들
상관·신병 사이 믿음·의심 그려
관객에 전쟁 참상·무익함도 전달
“이해 안 되는데 맹목적인 믿음
현실서도 발생… 갈등 끝에 부패”
연극이 시작되면 거대한 나무를 중심으로 신비감이 묻어나는 여인과 남루한 군복 차림의 병사 두 명이 무대에 등장한다. 본토와 멀리 떨어진 어느 나라의 섬에서 전투 중 쫓겨 나무 위로 피신한 ‘상관’과 ‘신병’ 이야기가 중심이다. 상관은 신병 앞에서 전쟁 경험이 많은 베테랑 군인 행세를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살고 싶어서 나무 위에 숨은 뒤 지원군이 오기만 기다릴 뿐이다. 신병을 ‘야’라고 부르며 무서워 숨는 게 아니라 ‘잠복 작전’이라고 우긴다. 맹목적인 애국심과 군에서 주입한 대의명분에 사로잡혀 고집불통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저 나고 자란 터전인 섬을 지키려 입대한 신병은 그런 상관이 이해가 안 되더라도 ‘상관님’이라고 깍듯이 대하며 믿고 따른다. 그렇게 둘은 생존을 위해 의지하면서 전쟁에 대한 관점이나 삶의 가치관 차이에 따라 대립하고, 어떨 때는 살의까지 품을 만큼 의심하며 충돌한다. 어느덧 나무 위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한 두 사람. 적군이 처음부터 둘의 존재를 알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쓰레기장에 놔둔 편지글을 보고 충격에 빠진다. ‘전쟁은 2년 전에 끝났습니다. 어서 거기서 나오세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구씨 역)와 영화 ‘범죄도시2’(악당 강해상 역) 등으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손석구(40)가 신병 역을 맡아 화제가 됐다.
2014년 연극 ‘사랑이 불탄다’ 이후 9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손석구는 4년 전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출연을 계기로 친해진 배우 이도엽(51)의 권유로 하게 됐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2인극을 하고자 여러 대본을 봤는데, 이 작품이 지금 시대 관객들이 볼 때 가장 땅에 붙어있는 작품일 것 같았다”며 “상대가 옳다고 믿기 때문에 싸울 수 없지만 이해되지 않는 답답함과 부조리가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됐다”고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상황인)데도 누군가를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하는 일이 가정이나 학교, 직장 등에서 벌어지잖아요. 계급이 있고 서로 능력치와 경험이 달라 갈등이 생기는데 그 믿음 때문에 썩어들어가는 거죠.”
관객 눈에만 보이는 나무의 혼령이기도 한 여인은 극의 상황과 흐름을 설명해주는 해설자 역할도 담당하는데 최희서(37)가 연기한다. 최희서와 손석구는 무명 시절과 다름없던 9년 전 각자 100만원씩 보태 ‘사랑이 불탄다’를 무대에 올린 인연으로 이번에 같이 하게 됐다. 신병과 상관이 과거 추억을 떠올릴 때 각각의 애인·아내 역도 소화한다. 당초 8월 5일까지 잡혔던 공연 일정은 ‘손석구 효과’로 관객이 몰리면서 12일까지 일주일 연장됐지만 일찌감치 매진됐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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