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정은 방북무산, 정전 70주년에 모두 끊긴 남북관계
북한이 내달 4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20주기에 맞춰 추진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을 거부했다. 김성일 북한 외무성 국장은 지난 1일 담화에서 현대 측이 방북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 “검토해볼 의향도 없다”며 “남조선의 그 어떤 인사의 입국도 허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북사업 끈을 이어온 현 회장의 방북 의사를 북한이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은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오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앞둔 지금 남북관계는 연락채널뿐 아니라 민간을 통한 교류·접촉도 모두 차단된 ‘블랙아웃’ 상태다. 남북 간 불신과 적대가 언제 어떤 돌발 사태를 초래할지 불안과 우려를 감출 수 없다.
북한은 현대가 조성한 금강산관광지구 내 해금강호텔을 무단 철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온 터여서 현 회장의 방북을 수용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관측돼 왔다. 그럼에도 북한의 방북 거부는 북한과 접촉하기도 전에 나왔다는 점에서 최악의 남북관계 현실을 반영한다. 대북사업을 주도해온 현대그룹 현 회장은 그간 남북관계가 악화됐을 때 방북하면서 긴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왔던 게 사실이다. 현 회장은 2013년 정몽헌 회장 10주기 추모식 등 참석차 여러 차례 금강산을 방문했다. 남북한 당국 모두 현 회장의 방북을 활용한 측면도 있다.
대남 관련 입장을 외무성이 발표한 것도 심상치 않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특수관계로 보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입장을 밝혀왔다. 북한이 외무성을 통해 입장을 낸 것은 남북관계를 보통의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재규정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2021년 “현 정세에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대남 대화기구인 조평통을 정리하는 문제를 일정에 올려놓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한 뒤 조평통의 활동은 관찰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남쪽에서도 확인된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통일부 장차관에 남북대화나 교류협력 업무와 무관한 인사를 지명했다. 윤 대통령은 2일 “통일부는 마치 대북지원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며 북한 인권 관련 업무를 주로 할 것을 주문했다. 통일부의 성격과 역할을 재규정하려는 것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북한의 도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런 접근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북한은 대결 국면 이후 반드시 미국과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장 북한과 일본이 납치문제를 놓고 접촉하고 있다. 추가 긴장 고조를 막고 향후 대화국면에서 수동적 존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어야 한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빗속에 모인 시민들···‘윤석열 퇴진·김건희 특검’ 촉구 대규모 집회
- 트럼프에 올라탄 머스크의 ‘우주 질주’…인류에게 약일까 독일까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나도 있다”…‘이재명 대 한동훈’ 구도 흔드는 경쟁자들
- 제주 제2공항 수천 필지 들여다보니…짙게 드리워진 투기의 그림자
- 말로는 탈북자 위한다며…‘북 가족 송금’은 수사해놓고 왜 나 몰라라
- 경기 안산 6층 상가 건물서 화재…모텔 투숙객 등 52명 구조
- [산업이지] 한국에서 이런 게임이? 지스타에서 읽은 트렌드
- [주간경향이 만난 초선] (10)“이재명 방탄? 민주당은 항상 민생이 최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