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시민 유해발굴단
1만1313.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휴전선 이남에서 발굴한 한국전쟁 실종 국군 유해 숫자다. 발굴단은 “수습되지 못한 12만3000여명의 호국용사들 유해를 조국의 품으로 모시겠다”며 발굴을 이어간다.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국가의 일이 여기에 그쳐선 안 된다. 찾지 못한 민간인 희생자 유해는 훨씬 많다. 전쟁 당시 남북한 민간인 사망자는 260만여명으로 군인 사망자의 4배다. 남쪽에서 학살된 민간인은 약 100만명으로 추정된다. 인민군 부역 혐의자로 몰려 군경에 학살된 사람이 가장 많다. 1960년 4·19혁명 직후 양민학살사건 진상조사특위가 꾸려져 유해 발굴이 이뤄지는가 했으나 5·16쿠데타로 중단됐다. 유족들은 숨죽이며 한 많은 세월을 살아야 했다. 200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며 유해 발굴이 시작됐다. 하지만 2005년 위원회 활동이 종료되며 발굴도 중단됐다. 집단매장 추정지 168곳 중 13곳을 발굴해 1617구를 수습했다. 그사이 건물과 도로로 덮이는 매장지가 늘어났고, 산사태로 유실된 유해도 많아졌다.
시민들이 참다못해 나섰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은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를 찾는 시민 발굴단의 얘기를 담았다. 체질인류학자인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를 단장으로 한 발굴단은 2014~2020년 380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아마추어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이름 모를 희생자의 유해를 찾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한 대학생 참가자가 희생자의 머리뼈를 조심스럽게 수습하는 장면이 나온다. 머리뼈 안에 가득 찬 흙과 나무뿌리를 털어내자 고인의 아래턱이 내려가며 입이 쩍 벌어졌다. 오싹한 모습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참가자는 “유골이 미소 지으며 고맙다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충남 아산 설화산 매장지에서 발굴된 성인 유해 대다수는 18~24세 여성으로 추정됐다. 어린이 유해도 많았다. 극한의 순간에도 업은 아기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려 했던 젊은 어머니의 모습이 70년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다시 강조하건대 이 일은 국가가 하지 않아서 시민들이 한 것이다.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는 국가라면 그 점을 알고는 있어야 한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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