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향우 판결' 쏟아낸 미국 연방대법원... 보혁 논쟁 한복판에 서다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에도 '위법' 판결
진보적 교육 정책에 잇따라 '사망 선고'
바이든 "대법원이 헌법 잘못 해석" 반발
낙태권 폐지 1년 만에 '사법의 정치화'
미국 연방대법원이 최근 보수적 판결을 쏟아내면서 ‘사법의 정치화’ 논란이 불붙고 있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소수 인종 우대’ 대학 입시 정책(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다음 날,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핵심 정책인 ‘대학 학자금 대출 탕감’ 행정명령도 위법이라고 판단하며 진보적 교육 정책에 잇따라 ‘사망 선고’를 한 것이다. 1년 전 여성의 임신중지(낙태) 권리 무효화 판결을 기점으로 가속화하는 미 연방대법원의 ‘우향우’ 행보는 미국 정치권의 ‘대법원 개혁’ 목소리까지 낳고 있다. 좀처럼 사법부 판결은 비판하지 않는 미국 내에서 최고 법원인 연방대법원이 보혁 논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 셈이다.
"학자금 대출 탕감, 대통령 행정명령 '권한' 없다"
1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날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 8월 내놓은 학자금 채무 면제 정책에 대한 소송 두 건에서 모두 6대 3 의견으로 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다수 의견을 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정책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시행할 권한이 없다”며 “시작 전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당 정책은 연간 소득액 12만5,000달러(약 1억6,450만 원) 미만의 소득자에겐 학자금 대출을 최대 2만 달러(약 2,650만 원)까지 면제해 주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1인당 1만 달러 탕감’ 공약의 연장선에 있는, 대표적인 ‘바이든표 야심작’이다. 공화당에선 “선거를 위해 행정부가 과도한 돈을 마음대로 푼다”고 거세게 비판했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로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NYT는 “바이든 대통령에겐 엄청난 좌절이자 정치적 타격”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대법관 임기제 필요" "차라리 공직 출마를"
바이든 대통령은 즉각 “대법원이 헌법을 잘못 해석했다”고 반박했다. 전날 그는 긴급 연설을 통해 “학자금 대출 탕감 계획을 중단하라는 대법원 판결은 잘못된 실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등교육법에 근거해 특정 조건의 학자금 대출을 면제하도록 할 것”이라며 다른 방식의 재상환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예고했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대법원 판결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민주당 주요 인사들은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대법관에게도 임기가 필요하다”며 현재 종신직인 연방대법관 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무소속으로 상원에서 민주당과 코커스를 함께 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보수 대법관들이 공공 정책을 집행하고 싶으면 대법원에서 나와 공직에 출마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도 “판사의 탈을 쓴 6명의 ‘보수 정치인’이 국가에 자신들의 정치를 강요한다”고 힐난했다.
진보 진영의 이 같은 반발은 바로 전날, 대법원이 흑인 및 히스패닉계 등에 대한 대학 입시 배려 정책 ‘어퍼머티브 액션’에도 위헌 판단을 했기에 더욱 컸던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대법관 9명인 연방대법원이 ‘6(보수) 대 3(진보)’이라는 구도로 재편된 결과, 그 후폭풍이 자꾸만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다. 대법원은 또, 이날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성소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도 내놓았다. 웹디자이너인 한 콜로라도 주민이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어 동성 커플의 작업 요청을 거부하고 싶은데, 이를 금지하는 콜로라도 주법은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낸 헌법소원에서 원고 손을 들어준 것이다. NYT는 이번 판결들에 대해 “지난해 낙태권 폐지만큼 충격적이진 않았으나, 이 역시 법원이 시민권을 축소하고 보수적 의제를 여전히 수용하고 있다는 걸 보여 준다”고 짚었다.
공화당은 '환영'... 일각선 "민주당에 기회" 분석도
물론 공화당은 ‘환영’을 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해당 정책에 대해 “(바이든이 선거에서) 표를 사려는 방법, 그게 전부”라고 깎아내렸다.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도 “학자금 대출이 없는 미국인 87%에게 관련 대출이 있는 13%를 위해 돈을 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옹호했다. 다만 일부 공화당원들 사이에선 ‘흑인 및 라틴계, 중산층 등 취약 지지층을 더 등 돌리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로써 미국 내 정치적 논쟁은 당분간 대법원을 둘러싸고 전개될 전망이다. WP는 “대법원이 보수층에 커다란 승리를 안겼다”며 “지난해 낙태권 보장 판결이 극적으로 뒤집힌 후, 로버츠 대법원장이 법원을 우익 중심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진단했다. 반면 오히려 민주당에 ‘기회’라는 분석도 있다. NYT는 “민주당 측에 관련 소송을 제기하고, 당에서 멀어진 유권자들에게 (다시 한번) 호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게 됐다”고 풀이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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