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지키는 보람에 1,776계단 올랐죠"…캐나다 한인 운전기사의 기부 도전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흘러가는 도시.
시내버스 운전기사 영희 씨는 오늘도, 누군가에겐 출근길 혹은 등굣길일지 모를 이들의 삶을 싣고 달립니다.
캐나다 이민생활 10년 차, 시내버스를 운전한 지도 벌써 6년째입니다.
동료 운전기사들 가운데 동아시아계 여성은 단 둘뿐이어서 때론 고된 상황도 있지만,
버스 운전을 하다 보면, 승객의 하루를 평안히 지켜주는 일 같아 자부심이 듭니다.
[양영희 / 시내버스 운전기사 : 보통 버스는 24시간 운행하기 때문에 밤에도 새벽에도 운전하기 때문에 그때 노숙자들이나 술 취한 사람들이 탔을 때 그때 어려운 부분들이 좀 많아요. (그렇지만) 직장이라든가 학교라든가 이분들이 꿈을 가지고 가는 곳을 향해서 갈 때 그분들을 위해서 그분들의 목적지에 태워준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그런 영희 씨는 요즘 코로나19 사태 이후 잠시 멈췄던 어떤 도전을 다시 준비하고 있습니다.
업무를 마친 오후, 피곤할 법도 한데 운동에 나서는 영희 씨.
벌써 두 달 가까이 일주일에 서너 번씩 시간을 내 체력 단련을 하고 있다는데요.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만은 아니랍니다.
[양영희 / 시내버스 운전기사 : 처음에는 제가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전기 소등하기, 계단 오르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오르기 등 소소하게 실천해 왔었어요. (그런데) 제 아들이 환경보호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탄소 배출이나 동물보호라든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래서….]
일정 거리를 달리면 그만큼 액수를 곱해 기부하는 일명 '러닝 기부'처럼,
토론토의 상징인 CN 타워의 계단 오르기에 성공하면 목표한 금액만큼 기부하는 실천 기부에 도전하게 된 겁니다.
사실 영희 씨는 CN 타워에서 열리는 다양한 주제의 러닝 기부에 2017년부터 3번이나 동참해 왔는데요.
코로나19로 한동안 중단됐던 행사가 모처럼 재개돼 다시 참여하게 됐습니다.
[양영희 / 시내버스 운전기사 : 선생님이 후원해주시면 제가 모금하기 위한 목표액을 달성하게 되고 그 달성하게 되면 제가 CN 타워 계단을 올라가게 될 계획이에요.]
오랜만에 열리는 기부 행사인 만큼,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행동에 나설 수 없는 이웃을 찾았습니다.
[김현승 / 캐나다 토론토 : 굉장히 좋은데 나는 지금 CN 타워를 오르는 게 무릎에 문제가 있어서 (대신) CN 타워 오르는 데 대해서 성공적으로 끝내면 거기에 대해서 얼마를 모금에 기여하겠다고….]
[양영희 / 시내버스 운전기사 : 그냥 아무 행사 없이 (기부나 봉사를) 제안할 때는 사람들이 반응을 해주지 않다가 이런 행사를 계기로 제안해주면 오히려 신뢰성을 가지는 것 같아서 이런 기회가 모든 사람을 이끌어 들이는 데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드디어 도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TV와 라디오 전파 송신탑으로 전체 높이가 553m나 되는 CN 타워 앞에 영희 씨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침부터 타워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데요.
올해 기부 행사를 마련한 건 1961년 설립된 세계 최대 비영리 환경보전 기관인 야생동물기금, WWF의 캐나다 지부입니다.
이틀 동안 성별과 나이, 체력 조건까지 다양한 5천 명이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메건 라슬리 / 캐나다 야생동물기금(WWF) 대표 : 참가자들이 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캐나다의 환경을 위한 기부금이 올라가는 거죠. 아름다운 이벤트입니다. 어떤 분들은 정말 자연환경을 위해 동참하시고 어떤 분들에게는 체력적인 도전이기도 해요. 뭐든 굉장히 특별한 거예요. 매일 CN 타워를 오르시는 게 아니잖아요. 굉장히 좋은 기회인 거죠.]
긴장한 얼굴의 영희 씨, 드디어 종소리와 함께 도전이 시작됩니다!
건장한 성인 두 명 정도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계단 총 1,776개를 사람들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정상을 향해 쉴 틈 없이 계단을 오르는데요.
과연 영희 씨는 도전에 성공했을까요?
영희 씨는 35분대의 기록으로 완주에 성공해, 총 1천 캐나다 달러 넘게 모금을 이뤄냈습니다.
도전을 끝낸 이들에게 남은 건 아름다운 토론토 도심의 풍경.
땀 흘린 보람을 느끼며 사람들의 마음속엔 뿌듯한 감정이 자리합니다.
[양영희 : 나를 후원해주고 응원해준 사람에게 감사함으로 보답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김예은 / 계단 오르기 도전자 : 재밌고 힘들어요. 다리에 힘이 없어요.]
[엠 아메 / 계단 오르기 도전자 : 무척 힘들지만 아주 좋았어요. 해보시면 느낄 거예요.]
오르는 길은 그렇게나 힘들었는데, 내려오는 길은 얼마나 쉬운지 모릅니다.
[양영희 : 아니 이렇게 쉽게 내려오는 걸.]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영희 씨는 오늘의 노력이 훗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아주 작은 보탬이라도 됐길 바라면서-
주변 이웃의 정성까지 짊어지고 이번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데요.
[양영희 : 정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올라왔었는데 참았어요. 그럼요. 또 해야죠. 내가 몸이 따라주는 한 열심히 하겠습니다.]
힘든 일상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 준비한 도전, 그리고 성취.
세상을 더 이롭게 만드는 건,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기꺼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작은 영웅들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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