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 이 땅의 모든 ‘무명’을 위한 위로…‘너와 나의 나침반’ [고승희의 리와인드]
이틀간 7000명·20~5060세대 대통합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우리가 비틀스도 아니고, 여기서 역사에 기록될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이럴 거면 우리가 역사책을 쓰면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 공동저자십니다. 그 역사책의 주인공은 너, 너, 너, 너, 너, 너, 고!”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는 것처럼 드럼은 ‘쾅쾅쾅’ 울렸고, 전자 기타는 난폭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 때마다 올림픽홀을 가득 메운 3500명의 관객은 일제히 응원봉을 흔들었다. 이미 객석에선 첫 곡부터 스탠딩이 시작됐다. 공연장을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스태프들은 위험하다며 관객들을 자리에 앉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현란하고 아찔했다. “세상에 없던 말”(야생마 가사 중)이었고, “시대의 판도를 가로지를 명마가 될 거”라는 이유있는 자신감과 함께 무대는 시작부터 뜨거웠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레이저와 포효하는 기타 소리에 날선 보컬, 오른손을 들고 환호를 끌어내는 몸짓까지, 새로운 ‘공연의 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승윤의 전국 투어 ‘도킹’의 앙코르 공연이 2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렸다. 이날 공연은 올초 정규 앨범 ‘꿈의 거처’ 발매를 기념으로 한 전국투어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시 한 번 열린 팬들과의 두 번째 축제였다. 이틀간 열린 공연을 통해 이승윤은 총 7000명의 관객과 만났다.
내리 세 곡을 이어 부른 뒤 이승윤은 “오늘은 이제 진짜 끝”이라며 “어제 전국투어 정산서를 받아봤다. 알고는 있었는데, 남는게 없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이렇게 남는게 없다고? 불공정 계약 이런거 아니다”라며 “그만큼 무대를 위해 쏟아냈다. 그러니 여러분도 남김없이 쏟아 부어달라”며 노래를 이어갔다.
앙코르 공연은 이승윤의 긴 무명, 불과 몇 년 전 시작된 ‘유명가수’로의 날들을 관통했다. 이승윤의 시간을 만든 곡들이 이어졌다.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하고,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라며 태양계에서 쫓겨난 명왕성의 마음까지 헤아린 2018년 내놓은 ‘무명성 지구인’. 이 노래를 마치더니 이승윤은 가만 있지 않았다. 그는 “제가 어제 기회를 드렸다. ‘무명성 지구인’의 브릿지 파트를 자신있다, 자신있다 하셔서 기회를 드렸는데 영 아니었다”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며 팬들을 쥐락펴락했다. 다시 시작된 ‘무명성 지구인’의 노래에 스탠딩 석의 관객들은 끊임없이 뛰어올랐다. 2019년 결성했던 알라리깡숑의 ‘가짜 꿈’, ‘게인주의’를 부를 때 지정석의 관객들은 결국 참지 못하고 일어섰고, 현장 스태프들도 말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싱어게인’ 이후 나온 음반보다 더 뜨거운 함성과 환호가 터졌다. “게인은 너와 나 빅뱅의 부싯돌”이라며 파괴적인 록 사운드가 신호 증폭을 끌어올렸다.
“별과 별 사이엔 어둠이 더 많다”(‘게인’ 중)는 것을 증명하듯 우주를 유영하는 영상과 밴드 연주가 흐르고, 알라리깡숑 시절의 ‘굳이 진부하자면’이 이어졌다. 조금은 삐딱하고, 그래서 애처롭게 들리던 어떤 시절의 소환이었다. ‘친구들이 어렵다’(‘굳이 진부하자면’ 중)고 말하는 노랫말은 가장 진부하지만, 확실한 ‘사랑해’라는 고백으로 이어졌다.
‘한 모금의 노래’를 시작하기 전엔 T(티) 자형 무대의 중앙으로 나와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팬들과 더 가까이에서 호흡했다. “어쿠스틱 무대를 정말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가 없어 이번엔 무조건 해야겠다”는 희망사항이 담긴 무대였다. 눈을 감고 읊조리듯 부르는 “내게 남은 이 한 모금의 노래가 그대에게 쉴 곳이 될 수”(‘한 모금의 노래’ 중)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3500명에게로 가닿았다.
이승윤의 음악은 이 땅의 무수히 많은 ‘무명의 존재’를 어루만진다. 그것은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누구보다 성실한 하루를 치열하게 버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난 나라는 시대의 처음과 끝이야, 난 나리는 인류의 기원과 종말”이라고 마음에 새기며, “넌 나라는 마음의 유일한 무덤이야, 넌 나라는 시계의 마지막 시침이야, 난 나라는 우주의 빅뱅과 블랙홀”(‘폐허가 된다 해도’ 중)이라고 노래할 때마다 그의 음성은 끊임없이 지구를 위로한다. 때론 그 위로가 슬프다. 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향한 기억(언덕나무)은 여전히 딱지로 남아 아물지 않았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멀쩡한 나침반”(‘꿈의 거처’ 중)을 찾을 수는 없지만, “네 짐과 친구가 되고”(‘도킹’ 중) 싶다며 손을 내민다. “조각조각 찢어진 꿈들을 하나하나 모아 희망이라”(‘흩어진 꿈을 모아서’ 중) 부르니, 결국 “구하고 원하다 보면 구원 속에 속한다”(‘우주 라이크 썸띵 투 드링크’ 중) 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스스로를 “삐뚜루 서 있는 마름모”라며, 다시 손을 잡아달라 한다. 단 한 번도 세계관을 공표한 적은 없지만, 이승윤이 데뷔부터 지금까지 견고하게 만들어온 세계관이다. 다시 맞잡은 손들이 불안한 마름모를 동그랗게 매만지고, 깊이 뿌리내리게 한다.
공연이 막바지로 향해갈수록 무대는 뜨거워졌다. 이승윤은 관객을 능수능란하게 조련했다. 그는 “어제 오늘, 약간 재밌었던 것 같다. 이게 스탠딩의 맛이구나. 다 끝나고, 손이 저릿저릿헸다”며 “어제 분들을 이겨야 된다. 이제 다섯 개 남았다. 다 쏟아붓고 가자”는 말에 3500석이 전원 기립해 무대를 함께 했다. 사운드는 폭발적이었으나, 올림픽홀이 감당할 수 없는 소리가 터져나와 귀를 괴롭히기도 했다. 특별한 이벤트도 있었다. 팬들이 공연 전 적어보낸 메시지 중 하나를 골라 깜짝 선물을 주며 소통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승윤이 ‘내 맘속 참 예쁜 달’이라는 메시지를 고른 뒤, 객석으로 손을 들면 총을 쏘겠다고 하자 3500명이 약속이나 한듯 손을 흔들어 콘서트는 다시 한 번 축제의 장이 됐다.
이승윤은 공연을 마무리 하며 “언젠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실린 적은 없지만, 언더독(스포츠에서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이르는 말)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그 땐 제가 언더독이라고 하면 기만이죠, 라고 했다. 전 오버독으로 하겠다고 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오버는 아닌 것 같다. 언더 드래곤 정도인 것 같다. 저는 정도(正道)로 음악을 계속 해보겠다. 내년에 앨범을 내겠다”고 말해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앙코르 곡은 ‘우주 라이크 썸띵 투 드링크’와 ‘웃어주었어’였다.
이승윤의 팬층은 독특하다. 2021년 무명가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을 통해 확보한 중장년층이 이승윤을 ‘유명 가수’로 만든 든든한 지지층이었다면, 그의 잠재된 음악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같은 세대의 남성팬들이 적잖이 자리했고, 20대 MZ 여성팬이 객석을 메웠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50대 부부 김명진, 박숙현 씨는 “‘싱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부부가 함께 이승윤의 팬이 됐다”며 “이승윤의 강점은 단연 음악성이다. 노래 한 곡 한 곡에 담긴 메시지가 20~30대를 넘어 우리 같은 중년 세대의 마음도 위로한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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