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인간적으로
[세계의 창]
[세계의 창]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 교수
요즘 독일에서도 민주주의 위기론이 파다하다. 기후변화, 피난민 문제, 코로나 바이러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온갖 대형 위기가 복합적으로 발생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증가했다. 반민주주의적인 서사를 선동하는 음모 이론가와 포퓰리스트들이 점점 더 기승을 부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컨대 독일대안당(AfD)이라는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은 연방의회에서 10% 이상, 대다수 옛 동독 지역의 지방의회에서는 20%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다. 최근 한 여론조사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 조사를 보면 옛 동독 지역 응답자의 약 40%만 독일 민주주의에 만족하는 반면, 옛 서독 지역은 약 60%가 만족한다. 주관적 사회 계층의식을 살펴보면 하층은 약 3분의 1만 민주주의에 만족하는 반면, 상층은 약 3분의 1만이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독일 민주주의는 이전보다 위협을 더 많이 받고 있다는 인식은 지역이나 계층 구분 없이 거의 모두(80%)가 공유했다.
이런 추세를 두고 독일 정부는 선거제도 등 정치사회 차원에서 과감하게 개선 대책을 이행하고 있으며,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올해 초 이른바 민주주의 촉진 법안을 연방의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민주주의 촉진을 위한 사업을 원활하고 지속가능하게 수행하기 위해 활동 조건을 대폭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컨대 이 법이 통과되면 극단주의를 방지하고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공들여 활동하는 시민사회 조직은 국고 보조금을 장기적이고 두텁게 지원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제도를 잘 활용하는 성숙한 민주시민이 없으면 제도적 노력은 소용이 없다. 물론 독일은 민주시민 교육 강대국으로 통하지만, 성숙한 민주시민은 머리를 넘어, 몸과 마음도 함께 단련했을 때 형성된다는 차원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 즉, ‘행동하는 양심’을 키워야 하는데, 그것은 개인(個人) 혼자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더불어(人間)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사회의 전반적인 ‘상업화’ 추세 때문인지 민주주의를 자판기로 오해하는 듯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정보통신기술 발달의 역효과(?)로 원자화한 개인의 네트워크는 있지만, 개인은 대체로 사회와 유리된 채 원자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원자화 경향은 비대면 배달문화의 확산으로 강화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 독일에서 일상생활 차원에서 민주시민 능력을 어떻게 다시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동네 구멍가게와 야외수영장을 더 활성화하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에 주목한다. 요컨대 이 공간에서 다양한 문화, 사회, 경제적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자꾸만 섞이고 부딪쳐야 자신과 다를 수 있고 다를 수밖에 없는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민주주의 공동체를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얼마 전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주에서 이 지역의 트링크할레(Trinkhalle·동네 구멍가게) 문화를 주 차원의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포함했다. 트링크할레를 이용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직업이나 기타의 구별이나 차별 없이 단지 인간으로 서로 만나게 됨으로써 사회통합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동네 (야외)수영장에서도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실천할 수 있는 기초 기술을 익힐 수 있다. 주민들은 여기서 계급장을 떼듯 수영복만 입은 채 어떤 사회적 구별 짓기도 서열화도 없이 대등한 관계로 서로 만나 서로의 존재와 공간을 허락할 때만 자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그 결과 야외수영장은 자유의 공간을 양심적으로 배우고 훈련할 수 있는 민주주의 배움터가 되고, 개인과 공동체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일상생활 속 대면과 접촉으로 편견에 도전하고, 민주주의 공동체 구성원 간의 이해와 신뢰를 증진함으로써 다가오는 민주주의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한자 뜻 그대로 인간(人間)적인 차원에서 기여하려는 노력도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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