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될 자격, 낳을 권리

장수경 2023. 7. 2.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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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첫 임신 동성 부부]

김규진(왼쪽)씨와 배우자 김세연(오른쪽)씨가 규진씨의 출산을 앞두고 만삭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밀럽프로젝트 @milleloveproject

[젠더 프리즘] 장수경 | 젠더팀장

지난해 ‘비혼 여성의 출산권’을 다룬 기사를 쓴 적이 있다. 한국에서 비혼 여성이 시험관 시술을 받는 건 불법이 아닌데도, 대부분의 난임병원에서 이를 불허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난임병원에서 운영하는 정자은행은 법적이거나 사실혼인 부부에게만 정자를 제공해 비혼 여성은 스스로 정자 기증자를 찾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정자 기증자를 구하더라도 ‘남편’이 없기에 병원에서 시술받을 순 없다. 여러모로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알면서도 주무부처 보건복지부는 방관했다. 복지부는 ‘불법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비혼 여성의 출산권’을 ‘불허’하는 병원 등에 대해 조처를 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시술을 거절당한 여성들은 결국 덴마크, 미국 등으로 눈을 돌렸다.

인터뷰 당시 만난 비혼 여성에게 ‘왜 아이를 낳고 싶냐’고 물은 적이 있다. 합계출산율이 0.78명(지난해 기준), 아이를 낳는 것보다 낳지 않는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져서다. 이 비혼 여성은 “결혼한 부부에게 아이를 왜 낳냐고 묻지는 않잖아요. 저는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엄마가 되는 건 어렸을 때부터 당연한 것처럼 꿈꿔왔어요”라고 말했다. 답을 듣고 부끄러웠던 기억이다. 누군가 아이를 낳고 기르고자 하는데 ‘왜’라는 질문이 꼭 필요했을까. 어쩌면 나는 남녀의 결합으로 이뤄진 가정 안에서만 자녀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제24회 서울퀴어퍼레이드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한 레즈비언 부부의 임신이 처음 공개됐다. 책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저자 김규진씨가 주인공이다. 규진씨는 지난해 말 벨기에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9월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는 4년 전 ‘멋진 언니’와 결혼하면서, 신혼여행 휴가를 받기 위해 회사에 청첩장을 제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간 한국 사회는 남녀의 결합으로 이뤄진 법적 부부의 출산만 사회적으로 인정해왔다. 비혼이나 동거 가정에서의 출산은 ‘비정상’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 시선은 규진씨 부부를 인터뷰한 기사 댓글에서도 읽힌다. 규진씨 예상대로 “아이가 걱정된다는 우려를 가장한 독설”이었다. 그들은 사회의 차별과 혐오를 그대로 두고선, 차별받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규진씨 부부는 그들에게 “그렇게 걱정되면 (아이가 차별 속에서 살지 않도록) 당신이 도와달라”고 말한다.

악플러들의 우려와 달리, 규진씨 부부는 ‘엄마’ 될 준비를 마쳤다. 출산용품을 준비하기보다, 어떤 엄마가 될 것인지, 엄마가 두명인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 등을 고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아이에게 행복한 가정보다 훌륭한 양육환경이 있을까.

“애는 낳을 거지?” 규진씨가 프랑스 여성 상사에게 들은 말은 짧지만 강렬하다. 이 한 문장엔 동성 부부에 대한 혐오도 차별도 없다. 부모 될 자격이나 권리를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존재 자체를 받아들인다.

합계출산율이 1.8명인 프랑스의 지난해 혼외 출산 비율은 63.8%다. 합계출산율이 0.78명인 한국의 혼외 출산율 2.9%(2021년)와 대조된다. ‘저출생’을 걱정하면서도 ‘정상 가족’ 밖의 출산은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현주소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프랑스는 2021년 비혼 여성, 동성 부부에게도 시험관 시술을 합법화했다.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동성 커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는 규진씨 말처럼 그의 임신은 한국 사회에 ‘동성 커플의 출산권’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생활동반자법과 가족구성권 3법(혼인평등법, 비혼출산지원법, 생활동반자법)이 발의된 상황에서 동성 커플과 비혼 출산권을 포함해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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