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배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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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지역 인문강좌에 강사로 나설 기회가 많다.
2014년과 2016년 낸 책 두 권이 경남 지역의 공간과 사람에 대해 쓴 것이라 경남 여러 지역을 돌며 내가 보고 들었던 근현대 민중생활사와 기록되지 못한 마을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
"우리 동네가 예사롭지 않다." "이제 진주를 좀 알겠다." 한 토박이 여성은 "내 오래된 기억과 경험이 진주 인문학 탐구의 출발이 될 수 있겠다"며 사는 지역을 더 알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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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권영란 | 진주 <지역쓰담> 대표
어쩌다 보니 지역 인문강좌에 강사로 나설 기회가 많다. 2014년과 2016년 낸 책 두 권이 경남 지역의 공간과 사람에 대해 쓴 것이라 경남 여러 지역을 돌며 내가 보고 들었던 근현대 민중생활사와 기록되지 못한 마을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경상국립대 인문도시진주사업단 제안으로 맡은 강의 주제는 ‘문학작품 속 진주 모습 찾기’였다. 2021년부터 진행된 인문매개자 양성과정으로 올해는 총 8강으로 구성돼, 역사나 사회학이 아닌 문학 분야에서 진주지역의 근대 모습을 찾는 시도였다. 솔직히 근대도시 진주를 지리적으로 공간적으로 추적하는 과정은 쉽지가 않다. 여기저기 흩어진 기록을 더듬고 겨우 남아있는 현장을 찾아 조각을 맞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천년 도시’라 일컫는 경남 진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진주성과 촉석루가 불탔고 도심이 초토화 됐던 도시다. 현재의 도시 형태는 1960년 전후 새로이 계획되고 건설된 것이라 도심에서 근대 건축물이나 옛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몇몇 연구자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지역사에 대한 인식이 낮아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지역 인문서도 많지 않다.
진주는 100년 전 백정계급해방운동 형평사를 조직한 도시, 지방 최초로 언론을 만들고 지방 최초로 전국 규모의 예술축제 ‘개천제’를 만든 도시다. 여러 원동력이 있겠지만 이번에는 문학에서 그 흔적을 찾아야 했다. 먼저 첫 번째는 근현대 시기 활동했던 진주문인들의 궤적을 통해 진주 근현대 도시 변천과 동시대 문화예술을 짚는 것, 또 하나는 대하소설 <토지>에서 소설의 주요무대였던 진주지역 근대도시의 모습을 좇는 것이었다. 전혀 다른 두 가지를 ‘근대도시 진주’라는 한 축에 꿰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지역탐구와 인문학 관점에서 흥미로운 접근이라 여겼다.
달리 신통한 방법은 없었다. 다 같이 옛 지도와 현재 지도를 펼쳐 들고 도시 전역을 걸으며 더듬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먼저 근대 최초의 인권운동인 형평사가 왜 진주에서 시작됐는지를 알기 위해 진주교회, 진주청년회관과 옛 진주극장, 형평운동기념탑, 백촌 강상호 묘소를 찾고, 문학작품에는 어떻게 다뤄졌는지 살폈다. 설창수 이경순 최계락 이형기… 근대 진주문인들을 좇아 지역에 흩어진 문학비와 기념탑을 찾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를 따라갔다. 20권인 이 소설 8권 3부부터는 진주가 주요무대 중 하나이다. 1919년~1945년까지의 진주가 곳곳에 담겨있다. 환국 윤국이 거닐던 지금은 흔적도 없는 남강 백사장을 지도에서 찾고, 봉순이를 따라 경남 최초의 시멘트다리인 진주교를 따라 건넜다. 진주만세운동 이후 구천이와 여러 인물이 드나들던 진주경찰서, 진주재판소터, 진주형무소터를 더듬어 찾았다. 1929년 진주학생운동을 도모했던 교정으로, 그리고 형평사 일원으로 백정해방과 독립운동을 하던 송관수의 유골함을 가져오던 옛 진주역도 걸었다.
답사가 이어지자 다 알고 있다고 여겼던 지역이 되레 낯설고 흥미로운 발굴지로 다가왔던 걸까. 속엣말이 절로 쏟아진다. “우리 동네가 예사롭지 않다.” “이제 진주를 좀 알겠다.” 한 토박이 여성은 “내 오래된 기억과 경험이 진주 인문학 탐구의 출발이 될 수 있겠다”며 사는 지역을 더 알고 싶어 했다.
지역인문학은 그간 불모지에 가까워 대중에게 더 알리고 한편으로는 전문적인 연구도 절실한 분야다. 그래서 얼마 전 설립된 ‘진주학연구센터’가 반가운 이유이다. 지역연구를 여러 분야가 협력해 ‘진주학’이라는 독자적인 학문으로 정립하겠다니 분명 새로운 변화이다. 이 변화의 결과가 지역자치와 지역분권의 한 축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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