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자포리자 원전?…커지는 '핵 재앙' 불안감
전문가 "최악의 경우 日 후쿠시마급 사고 날 수도"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우크라이나 남부 카호우카 댐 붕괴로 인근 자포리자 원전의 사고 위험이 커진 가운데, 러시아가 원전을 고의로 파괴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핵 재앙'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자포리자주 에네르호다르 인근의 드니프로강 동안에 있는 자포리자 원전은 단일 원전으로는 유럽 최대 규모로, 전쟁 발발 직후인 작년 3월 러시아에 점령됐다. 이후 일대에서 포격과 군사 활동이 끊이지 않으면서 사고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드니프로 강 하류에 있는 카호우카댐이 폭발로 파괴되고 원전 냉각수를 제공하는 저수지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사고 위험이 더욱 커졌다.
현재 자포리자 원전의 원자로 6기 모두 가동이 중단됐지만 핵연료봉 등 방사성 물질은 계속 냉각되는 등 관리를 받아야 한다.
이런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고위 관리들은 러시아군이 자포리자 원전을 파괴할 것이라며 경고의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국방부 군사정보국장은 대변인을 통해 러시아군이 자포리자 원전 내 원자로 6기 가운데 4기에 폭발물을 설치했으며, 원전 냉각수를 공급하는 원전 인근 저수지 주변에 지뢰를 매설했다고 주장했다.
군 정보국은 또한 지난달 30일 보고서에서는 자포리자 원전의 러시아 감독관 3명이 최근 대피했으며, 원전에서 일하는 우크라이나 직원들은 오는 5일까지 떠나라고 통보받는 등 현장 상황이 좋지 않음을 시사했다. 자포리자 원전은 러시아가 점령 중이지만 발전소 운영은 우크라이나 직원들이 맡고 있다.
정보국은 또한 보고서에서 현장에 남은 직원들이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우크라이나 측 소행이라고 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자포리자 원전을 파괴한 뒤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위장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개연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측의 이같은 우려가 현실이 된 전례가 있다. 다름 아닌 카호우카 댐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10월 러시아가 카호우카 댐을 파괴하고 이를 우크라이나의 소행으로 뒤집어씌울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자포리자 원전에 남아 일하고 있는 한 우크라이나 직원은 익명을 전제로 "테러리스트 공격 위험이 크다"고 WP에 말했다.
러시아가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하지 않더라도 사고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익명의 원전 직원은 발전소에서 원자로 냉각수의 양을 이미 줄였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아카데미의 올레나 파레니우크 선임연구원은 냉각수 저수지 수위가 원자로 냉각에 필요한 최소 수위보다 겨우 4m 높은 수준이며, 원전에 남은 직원들이 너무 적어 비상사태 발생 시 대응하기가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 관리와 원전 전문가들은 원자로가 충분히 냉각되지 않으면 원자로가 과열돼 핵연료봉 다발이 녹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이 발생하고,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중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부다노우 국장은 원자로에 냉각수 공급이 끊어지면 짧으면 10시간에서 2주 사이에 멜트다운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파레니우크 연구원은 자포리자 원전 사고가 현실화한다면 원자로 가동 중에 폭발한 체르노빌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최악의 경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비슷한 규모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고가 일어나면 방사성 물질이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퍼져 농지를 오염시키고 이웃 유럽 국가로도 번질 수 있으며, 드니프로강을 통해 흑해 연안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파레니우크 연구원은 우려했다.
자포리자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은 전쟁의 포격 속에서 핵 재앙까지 덮칠 수 있어 불안에 떨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방사성 낙진이 발생할 경우를 위해 지하 대피소를 마련해 두거나 창문 밀봉용 테이프, 요오드 정제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핵 재앙에 대비해 자포리자주 일대에서 원전 비상 상황을 상정한 대처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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