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포커스] 장내 미생물 `리빌딩`… 암·파킨슨병 `먹는약` 치료길 여나
셀트리온 등 국내 제약사들도 도전장… 정부, 4000억원 투자
사람의 장 내 미생물 환경을 바꾸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가 비만, 암, 고혈압 등 다양한 질환에서 신약의 단초가 될 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염증성 잘 질환 분야 외에 아직 신약이 나오지 않았고 임상의 성패 여부도 알 수 없어 '미지의 영역'으로 꼽히지만, 치매, 비만, 면역 등이 장내 미생물 생태계와 연관돼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 먹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FDA 첫 허가
지난해 11월 스위스 제약사 페링파마슈티컬스의 '리바이오타'가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로는 처음으로 FDA(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은 데 이어 올해는 염증성 장 질환 분야에서 첫 경구용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가 나와 시장의 기대가 커진 상황이다.
FDA는 지난 4월 미국 세레스 테라퓨틱스가 개발한 경구용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보우스트(SER-109)'를 승인했다. 이 치료제는 난치성 감염질환 중 하나인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CDI)에 대한 항생제 치료 후 재발 방지용으로 18세 이상 성인에게 처방한다.
CDI는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CD) 균이 과잉 증식하면서 장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알려졌다.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은 미국 질병 관리통제센터(CDC)가 긴급 공중보건 위협으로 지정한 질병으로, 병원에서 흔히 발생하는 의료 관련 감염으로 꼽힌다. 노인, 기저 질환 환자,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은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에 더 취약하고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 뚜렷한 치료제가 없고 재발률이 높아 미국에서는 연간 1만5000~3만명이 CDI로 인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우스트는 건강한 성인에서 후벽균을 수집해 제조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다. 후벽균의 장내 미생물 중 큰 비중을 차지하며, 비만, 염증, 당뇨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우스트는 비정상적인 장내 미생물의 균형을 잡아 CDI 균에 저항할 수 있게 해 CDI의 재발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장염을 치료한다.
◇암·치매·면역질환, 마이크로바이옴이 극복 열쇠 되나
보우스트에 앞서 FDA를 뚫은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은 리바이오타다. 페링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리바이오타는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리 감염(CDI)의 재발 방지를 위한 약물로 승인됐다. 페링파마슈티컬스에 따르면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리 감염증 환자 262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시험에서 리바이오타 투약군 70.6%가 8주 이내에 증상이 사라져 위약(57.5%) 투약군보다 우월한 효능이 나타났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리바이오타와 보우스트의 허가가 마이크로바이옴 시장 성장에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치료제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옴은 체내 미생물 집단의 유전정보를 일컫는 용어로, '미생물(Microbe)'과 '생태계(Biome)'의 합성어다. 미생물의 유전정보가 인체 면역체계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착안됐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소화를 원활하게 하고, 콜레스테롤·혈당 수치 조절과 뇌신경 전달물질 생성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확인됐다. 현재까지는 장 질환 대상 바이크로바이옴 치료제만 성공했지만 체 내 미생물이 면역 반응이나 각종 질환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에서 출발한 이 연구는 최근 암, 치매 등 각종 질병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 도전장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도 빠르다. 셀트리온은 올해 2월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 회사인 리스큐어바이오사이언시스와 마이크로바이옴 파킨슨병 치료제 공동 연구개발 계약을 맺었다. 두 회사는 경구 제형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리스큐어가 초기 개발을 마치면 셀트리온이 임상과 허가를 맡는 구조다. 지난해 3월에는 고바이오랩과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과민성대장증후군,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개발 계약도 맺었다.
유한양행과 CJ제일제당은 마이크로바이옴 개발 회사를 인수합병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유한양행은 에이투젠을 인수했고, CJ제일제당은 천랩을 사들여 CJ바이오사이언스로 출범시켰다.
에이투젠은 지난해 11월 호주에서 질염 치료제 'LABTHERA-001'의 임상 1상 투약을 시작했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올해 1월 FDA로부터 면역항암제 'CJRB-101'의 임상1·2상을 승인 받았다. 최근 CJ바이오사이언스는 영국 및 아일랜드 소재 마이크로바이옴 기업 '4D파마'의 신약후보물질을 대거 도입하기로 했다. 종근당바이오도 지난해 연세대 의료원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지놈앤컴퍼니는 후보물질 'GEN-001'을 앞세워 항암 임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GEN-001은 독일 머크, 화이자, MSD 등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위암과 담도암에 관한 임상 2상에 들어갔다. 기존 치료제와 병용해 새로운 치료 옵션을 찾는다는 전략이다.
고바이오랩은 면역질환을 주로 공략하고 있다. 주요 후보물질은 건선 치료제 'KBLP-001'과 염증성장질환 치료제 'KBLP-007'이다. 모두 미국에서 임상 2상을 승인받아 환자 모집과 투약을 진행하고 있다. 천식 치료제 'KBLP-002'도 임상 1상을 마친 뒤 미국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아이바이옴, 고바이오랩, 엔테로바이옴 등도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치료제로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부도 관련 지원에 나섰다. 정부는 2025년부터 2032년까지 8년에 걸쳐 지원하는 범부처 '인체질환 극복 마이크로바이옴 기술개발 사업'을 계획 중이다. 4000억원 내외의 예산을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에 투자할 방침이다. 식약처는 최근 의약품 분류 체계에 속하지 않던 생균치료제를 생물의약품에 추가하는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도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차세대 의료 기술을 확보하는 사업에 최근 착수했다.
제약바이오 업계 한 관계자는 "미생물과 질병과의 상관관계가 속속 밝혀지면서 향후 재발성 CDI에서 자가면역질환, 뇌질환, 종양 등으로 적응증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강민성기자 km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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