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의심 사이···나무 위에선 아직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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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에 군대가 있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하얀 옷을 입은 신비로운 '여자'의 한 마디로 시작된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인 1945년 4월 오키나와 전투가 일본의 패배로 종결된 후 이 섬 오키나와 출신인 '신병'과 일본 본토 출신인 '상관'으로 이뤄진 군대는 적군을 피하던 중 커다란 나무 위로 숨는다.
이제 적군의 함정일지 모른다며 나무에서 내려갈 수 없다고 주장하는 상관과, 상관을 향한 굳센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신병간에 균열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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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오키나와 전투 끝났지만
나무 위 숨은 병사, 2년째 안내려와
냉혹한 현실 속 복잡한 심리 묘사
손석구, 연극서도 내면 연기 눈길
나무 배경 뿐인 소극장에 몰입감
“나무 위에 군대가 있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하얀 옷을 입은 신비로운 ‘여자’의 한 마디로 시작된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인 1945년 4월 오키나와 전투가 일본의 패배로 종결된 후 이 섬 오키나와 출신인 ‘신병’과 일본 본토 출신인 ‘상관’으로 이뤄진 군대는 적군을 피하던 중 커다란 나무 위로 숨는다. 나무를 내려가면 적군을 마주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이들은 언젠가 그들을 찾을 지원군을 기다린다. 적군의 물자를 이용하며 나무 위의 삶에도 적응해 간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쟁은 끝났고 이를 모른 채 나무 위에 있는 그들에게 쪽지가 도착한다. 쪽지에는 “전쟁은 2년 전에 끝났습니다. 어서 나오십시오”라고 씌여있다.
이제 적군의 함정일지 모른다며 나무에서 내려갈 수 없다고 주장하는 상관과, 상관을 향한 굳센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신병간에 균열이 생긴다. 외면해왔던 현실의 냉혹함 속에 이들은 지상으로 내려갈 지를 두고 대립을 시작한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일본 정부의 항복 사실도 모른 채 2년 동안 오키나와의 나무 위에 숨어서 살아남은 두 일본 병사의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일본 문학의 거장인 이노우에 히사시가 원안을 집필하던 중 사망하자 극작가 호라이 류타와 연출가 쿠리야마 타미야가 이를 이어받아 완성했다. 초연은 2013년 도쿄 분카무라 시어터 코쿤에서 열렸다. 한국 공연은 연극 ‘온 더 비트’ 등을 제작한 민새롬 연출이 맡아 지난달 20일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렸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영화 ‘범죄도시 2’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손석구가 ‘신병’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상관 역에는 배우 김용준과 이도엽이, 여자 역에는 최희서가 캐스팅됐다.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손석구는 연극 연기를 선보이는 데 대해 “매체와 연극 연기가 다른 건 없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연기 스타일이 연극으로 다시 왔을 때에도 가능한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무대에서도 손석구의 연기는 특유의 자연스러움을 통해 신병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신병은 유년의 추억이 가득한 고향을 지키기 위해 군대에 자원한 인물이다. 일본 본토 출신으로 명분을 중시하는 상관과는 전쟁에 임하는 목적도 태도도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손석구는 “신병 캐릭터가 정서적으로 맑고 순수하다 보니까 나처럼 때묻은 사람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이 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극에서는 직접적으로 일본이 언급되지는 않는다. 대신 전쟁의 참상 속에서 국가의 억압으로부터 도피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심리를 묘사한다. 일본 공연에서는 여자가 오키나와 민요를 부르는 등 토속적인 부분이 강조된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여자는 문화적 요소를 지운 채 자연의 생명력을 드러내며 관객의 공감 폭을 넓혔다. 민 연출은 “여자는 서술자일 수도, 전쟁에 희생당한 모든 존재를 상징할 수도 있다. 배우 입장에서 다양한 감각들로 인물을 구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영롱한 음향 효과 등 배우가 인물을 구축하는 논리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110분의 연극은 거대한 나무가 설치된 한 가지 배경 속에서 진행된다. 320석의 소극장이라는 규모가 몰입감을 더한다. 매진 행렬이 이어지면서 연극은 다음달 12일까지로 기간이 연장됐다.
박민주 기자 mj@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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