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농담 같은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
악몽 같은 현실과 환상 보여줘
아리 애스터 감독 “가장 나다운 영화”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5일 개봉)는 악몽 같은 영화다. 악몽에서는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보(호아킨 피닉스)는 엄마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비행기표를 끊어뒀지만 전날 밤 이웃의 방해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늦잠을 자버린다. 황급히 짐을 챙겨나가려 하지만 물건을 깜박했다. 물건을 챙기는 사이 집 열쇠가 사라진다. 약을 먹어야 하는데 집에 물이 없다. 물과 함께 마시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보는 집 앞 마트로 달려나간다. 거리에 있던 부랑자들이 열쇠가 없어 열어둔 보의 아파트에 들어가려 한다. 신용카드가 막혔다. 동전을 찾아 주머니들을 뒤지는 사이 사람들은 보의 집에 침입한다.
편집증 증세를 보이는 보를 둘러싸고 익숙한 공포들이 집합한다. 비행기를 놓치면 어떡하지. 문을 잠깐 열어둔 사이 누가 집에 들어오면 어떡하지. 화장실에서 옷을 다 벗고 목욕하는데 누군가 나타나면 어떡하지. 뉴스에 나오는 연쇄살인범이 내 눈앞에 나타나면 어떡하지. 영화는 고약하게도 보의 걱정을 모두 현실로 만든다. <유전> <미드소마> 등을 만들어 공포영화 거장으로 떠오른 아리 애스터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뒤틀린 상상을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전통적인 호러 장면은 거의 없다.
지난달 28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애스터 감독은 “이 영화는 방대한 유대계 농담”이라며 “궁극의 ‘유대인 어머니’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유대 문화에서는 어머니를 신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영화에서 보의 엄마 모나(패티 루폰)는 보가 가진 공포의 근원이다. 그는 중년 아들에게 집착하고 그의 욕구까지 통제하려 한다. 대개 할리우드 영화는 선망할 만한, 따뜻하고 끈끈한 가족을 주로 그리지만 애스터 감독은 가족을 공포의 근원으로 삼는다. 그는 “미국 영화에서 묘사하는 전형적인 핵가족의 모습은 제가 아는 가족의 모습과는 다른 것 같다. 가족은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요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의 좋은 면을 얘기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좀 지루할 것 같았다. 제가 인간으로서 성숙하면 그런 영화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애스터 감독은 10여년 전 썼던 시나리오를 다듬어 이번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보라는 캐릭터가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그는 “보가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고 그 사이에서 계속 갈등하는 부분이나 그가 가진 죄책감이 나와 닮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에 가장 자기 검열을 적게 하고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본 가까운 친구들은 ‘정말 너다운 영화’라고 평한다고 했다.
그는 그리스 신화, 구약성서, 프로이트 사상,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영화에 카프카적 요소가 너무 많아 일일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카프카는 가장 웃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삭막한 와중에도 유머를 찾아낸다.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애스터 감독은 여러 차례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박하사탕>이다. 한국 영화는 형식을 깨고 자유로운 표현을 하는데 그 점에 특히 매료된다”며 “미국에서는 멜로드라마 장르가 최근 많이 다뤄지지 않고 있다. ‘멜로드라마’가 감정이 과잉된 사람한테 조롱하는 말로 쓰일 정도다. 한국 영화는 멜로드라마 요소가 많은 점도 좋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김기영, 장준환 감독 등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할리우드 리메이크 제작에도 참여한다.
영화는 네 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보가 기절했다가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보의 환상과 현실이 버거운 만큼 179분의 러닝타임은 다소 길게 느껴진다. 애스터 감독은 보를 ‘성장이 정지된 인물’이자 ‘청소년 같은 심리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감독은 보를 동정하는 것일까, 조롱하는 것일까. 애스터 감독은 “현재 보의 모습에서 얼마만큼이 자기 책임이고, 얼마만큼이 엄마에게 기인하는지 질문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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