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스톱앤드고' 그림자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3. 7. 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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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운전할 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연료도 많이 들고 시간도 늘어난다.

유능한 운전자는 속도를 서서히 높이면서 주행하다가 목적지 근처에 도달하면 속도를 서서히 줄여 목적 지점에 정확히 차를 세운다.

중간에 자주 세우는 이유는 목적지를 잘 모르거나 운전이 서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서툰 운전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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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운전할 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연료도 많이 들고 시간도 늘어난다. 유능한 운전자는 속도를 서서히 높이면서 주행하다가 목적지 근처에 도달하면 속도를 서서히 줄여 목적 지점에 정확히 차를 세운다. 중간에 자주 세우는 이유는 목적지를 잘 모르거나 운전이 서툴기 때문이다. 물가와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통화정책도 비슷하다. 경제 상황에 맞춰 금리 수준을 정하고 그 지점까지 정책을 집행하다가 목표에 도달하면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한 수순이다.

2023년 각국의 통화정책은 이런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19로 급등한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준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스톱앤드고'를 반복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3월부터 1년 넘게 기준금리를 올리다가 6월에 멈췄다. 그러면서 7월엔 또 올릴 태세다. 캐나다는 올 들어 5개월간 기준금리를 동결했다가 6월에 올렸다. 호주와 영국은 3~4월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다음 5~6월에 연속 인상했다. 신흥국들은 정도가 더 심하다. 브라질은 지난 1년간 동결했던 기준금리를 6월에 1.25%포인트 올렸다. 환율 불안에 신음하는 튀르키예는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동결했던 기준금리를 6월에 6.5%포인트나 인상했다. 한 마디로 서툰 운전자의 모습이다.

'스톱앤드고'식 통화정책은 1970년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시행했다가 물가 급등을 야기해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이 정책이 가져오는 가장 큰 부작용은 사람들의 기대를 흐트러뜨린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계속 올리면 실제 물가도 떨어지지만 사람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진정된다. 그러다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금리 인상을 중단하면 인플레 기대가 다시 형성된다. 인플레 기대 심리가 확산되면 근로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기업들은 제품 값을 올린다. 인플레 기대는 현실 물가 상승을 야기하고 이는 다시 인플레 기대를 더 높이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중앙은행이 인플레 기대 심리를 진정시키려면 이전보다 더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

미국이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은 지난해 6월 9%까지 올랐다가 올해 5월에는 4%까지 떨어졌다. 1년을 내다본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해 이후 금리 인상 기간에 실제 물가상승률보다 낮았다. 그러다 올해 5월 기대물가상승률은 4.2%를 기록하며 26개월 만에 실제 물가상승률을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예상 기준금리 수준도 높아졌다. 지난 3월 미국 연준 위원들은 올 연말 기준금리가 연 5~5.25%가 될 것으로 전망한 빈도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6월에는 대다수가 연말 기준금리를 5.5~5.75%로 예상했다.

유럽과 신흥국들이 미국 통화정책과 디커플링되며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인플레 기대심리를 잡지 못하는 미국의 통화정책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사 표시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은행이 올 들어 계속 금리를 동결하면서 5월 우리나라도 26개월 만에 기대인플레율(3.5%)이 물가상승률(3.3%)을 넘어섰다. 앞으로 인플레 기대가 진정되지 않으면 기준금리를 당초 예상보다 더 올리는 것이 불가피하다. 세계 각국의 통화정책은 이제 인플레 기대심리와의 싸움이다. 여기서 실력이 판가름 난다.

[노영우 국제경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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