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어도 달라지는 게 없다”···폭염 속 노동자의 하루

김세훈·전지현·김송이 기자 2023. 7. 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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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강동구의 한 대형마트 매장 주차장에 마련된 택배노동자 등을 위한 천막 휴게실 앞을 마트 관계자가 지나치고 있다. 김세훈 기자

기온이 34도를 웃돈 2일 오후 2시 서울 강동구의 한 공사장 내부는 열기가 가득했다. 작업반장이 아이스크림이 담긴 바구니를 작업자들이 모인 위층으로 날랐다. 공사장 한쪽에는 식염수통과 제빙기가 놓여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채운식씨(56)는 “오늘 같은 날씨에는 20분만 일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는 게 가장 고충”이라며 “식염수를 아침에 하나, 오후에 하나씩 챙겨 먹는다”고 했다. 그의 작업모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채씨는 “25년 전부터 공사장에서 일했는데 해마다 더위가 심해지는 것 같다”면서 “20년 전에는 낮 최고기온이 30도만 되어도 덥다고 하면서 작업을 하지 않았다. 요즘에는 최고기온이 34도에 육박해도 일을 한다”고 했다.

2일 서울 강동구의 한 건설현장에서 건설노동자 채운식씨(56)가 공사현장에 설치된 제빙기를 보여주고 있다. 김세훈 기자

채씨에게 이곳은 그나마 더위를 견딜만한 건설 현장이다. 2층에 천장 역할을 하는 합판이 깔려있어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씨는 작업 도중 짬을 내 이곳에서 더위를 식힌다. 그는 “정부가 햇볕이 강한 시간대에는 활동을 자제하라고 하지만 그게 지켜지는 건 1군 건설사의 시공 현장 정도”라며 “공사 기간과 단가를 맞추는 데 사활이 걸린 중소업체에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고 했다.

적절한 냉방시설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폭염은 재난이다. 지난달 19일 경기 하남의 한 대형마트 지하주차장에서 카트 정리 업무를 하던 김모씨(31)가 업무 중 쓰러져 숨졌다. 당시 하남의 낮 최고기온은 33도로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동료노동자들은 냉방시설이 없고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는 작업환경 때문에 김씨가 숨졌다고 주장했다.

행정안전부는 전날 폭염 경계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했다. 전날 체감온도가 35도를 웃돈 데 이어 내일까지 무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말을 맞아 해수욕장 등 피서 장소가 인파로 북적였지만 폭염에도 쉴 수 없는 노동자들의 고충은 커지고 있다.

김씨가 숨진 지 약 2주가 흐른 이날 방문한 주차장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해 보였다. 동대문구 소재 건물의 주차관리원 김모씨(69)는 3.3㎡ 남짓한 1인용 컨테이너에서 더위를 식힌다. 에어컨이 없는 탓에 탁상용 선풍기에 의존해야 한다. 습하고 더운 여름에는 컨테이너 곳곳에 곰팡이가 핀다고 한다. 김씨는 “여름에는 물을 많이 먹는 것 외에 방법이 없지만 물마저도 금방 더워져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 정도면 견딜 만한 편”이라고 했다.

2일 서울 강동구 내 한 대형마트 주차장 앞에서 주차 관리원이 차량을 안내하고 있다. 그의 옆에는 이동형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었다. 김세훈 기자

땡볕에서 일해야 하는 야외주차장 안내요원도 폭염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강동구 한 대형마트 앞 도로에서는 밀짚모자를 쓴 주차안내요원들이 연신 형광봉을 흔들며 차량을 안내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이날에도 권모씨(38)는 회사 규정이라며 마스크를 코끝까지 올려 썼다. 권씨와 5m쯤 떨어진 거리에는 회사에서 제공한 이동식 에어컨이 놓여있었다. 그는 “에어컨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뚜렷하게 시원해지지는 않는다. 날이 더울 때는 회사에서 주는 얼음물 등을 마시면서 버틴다”고 했다.

인근 주차장 관리원 김모씨(59)는 “우리 같은 노동자들은 휴식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을 때 알음알음 그늘에서 쉬는 식으로 일한다”고 했다.

지난 1일 서울역 인근 공사장에 설치된 냉수 제공 장소. 전지현 기자

도시가스 안전검침원과 배달라이더 같은 이동노동자들에게도 폭염은 고역이다. 정부는 폭염에 노출되는 야외노동자에게 1시간 중 15분의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더위가 심한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야외작업을 피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날씨에 관계없이 일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도시가스 안전검침원으로 일하는 김윤숙씨(55)는 하루에 약 120가구를 방문한다. 폭염주의보가 내리는 날에는 어지럼증을 예방하기 위해 진통제를 챙긴다. 그는 “그늘이 많은 계단 같은 곳에서 10분 정도 쉬는 게 최선이지만 그마저도 일이 밀려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아 잘 쉬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무더운 날에는 업무 소통방에 ‘일을 피해달라’는 공지가 올라오기는 한다. 그런데 노동자 입장에서는 쉴 여력이 없다”며 “폭염이라고 일의 총량이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결국 쉬면 쉴수록 다음날 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는 구조”라고 했다.

6년 차 배달라이더 김정훈씨(41)는 “실제 기온이 33도라면 달궈진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는 거의 체감온도가 40도 정도로 느껴진다”면서 “그렇다고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노동자로서는 덥거나 춥다고 일을 안 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이동노동자들이 쉬고 싶어도 가까운 곳에 쉼터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동노동자 쉼터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9일을 기준으로 작년 104명이었던 온열질환자는 올해 149명으로 45명 늘었다. 박세중 민주노총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부장은 “노동자의 휴게시설에 대한 제도가 충분히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노동자가 지나친 폭염에는 작업을 쉴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제대로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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