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장투도 OK"… 화성우주선·AI에 수십억씩 계좌이체

차창희 기자(charming91@mk.co.kr) 2023. 7. 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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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기업에 꽂힌 개인 큰손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한 세미나장. 삼성증권이 마련한 인공지능(AI) 설명회에 큰손들이 모였다. 행사장을 찾은 300여 명이 보유한 1인 평균 금융자산은 300억원. 대략 '1조원'의 슈퍼리치 자금이 챗GPT AI가 가져올 미래 투자 기회를 찾기 위해 '열공'에 나선 것이다. 참석자들은 "우리는 인류 역사상 기계와 대화하는 첫 세대다. 수많은 서비스가 생기고 투자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AI 전문가 분석에 귀를 기울였다. 수백억 원을 투자 중인 50대 슈퍼리치는 "AI와 관련된 우량물 투자 기회가 있다면 장기적으로 묻어둘 생각"이라며 "사모투자 같은 프라이빗 딜에도 관심이 있다"고 전했다.

국내 슈퍼리치 자산이 최근 몇 년 새 수백조 원에 달할 만큼 덩치가 커지면서 상장 주식·채권 투자를 넘어 글로벌 비상장 미래 기업을 발굴해 선제적으로 베팅하는 투자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관투자자들의 전유물이었던 투자처에 슈퍼리치 자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원화와 달러화 자산 위주 투자 배분도 엔화로 급속히 확장되고 있다. AI 테마와 결합해 미국의 경우 엔비디아, AMD 등 반도체 설계 기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엔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자, 닛케이 반도체 관련 소재 부품 장비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 지형을 넓히고 있다.

이들은 AI, 반도체, 2차전지는 물론 우주 개발, 에너지 전환과 같은 글로벌 대변혁을 주도할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는 게 특징이다. "글로벌 승자가 될 만한 싹이 보이는 곳에 장기 투자하면 결국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경험칙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최근 최대 관심사는 AI다. AI에 일찍 눈을 뜬 슈퍼리치 중에는 AI 시대 총아로 떠오른 엔비디아 주식을 9달러대에 머물 때 사들인 사례도 있다. 현재 엔비디아 주가는 400달러를 크게 웃돈다. 만기 15년 이상인 한국·미국 장기채에 투자하고 있다는 한 슈퍼리치는 "요즘엔 성장성 있는 AI 투자처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전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슈퍼리치들은 사모펀드를 포함한 펀드와 신탁 투자를 부동산, 예금, 주식 다음으로 유망한 투자 자산으로 선정했다. 프라이빗 딜 참여를 통한 비상장 주식 선취매에 대한 수요가 높은 셈이다.

최근 KT 자회사 KT클라우드 관련 펀딩에 고액 자산가들이 대거 참여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업계에 따르면 연기금, 공제회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인 이번 딜에 삼성증권 슈퍼리치 자금이 대거 참여했다. 총 6000억원 규모를 모집한 가운데 삼성증권 리테일에서 533억원이 유입됐다. 1인 최대 가입 규모는 100억원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요 기관투자자들도 참여해 오버 부킹이 될 정도로 인기가 많은 딜이었다"며 "특히 큰손들이 기관 유동성공급자(LP) 수준으로 자금을 댔다"고 전했다.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 조 단위 자금 유치를 진행 중인 2차전지 대기업 SK온에도 슈퍼리치 자금이 대거 유입됐다. 펀드를 조성한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최소 투자액은 10억원 이상으로 주로 고액 자산가들이 투자했다"고 귀띔했다. 이미 상장된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주식을 사는 것보다 다소 리스크가 있더라도 상장 전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고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 규모가 크고 장기간 자금이 묶일 가능성이 있지만, 장기 보유와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는 의미"라며 "큰손들의 자산 규모가 커지면서 일부 자금은 기관과 비슷한 투자 패턴을 쫓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전자 치료, 우주 개발처럼 '꿈'을 좇는 초장기 투자처에도 서슴없이 자금을 댄다. 미래에셋그룹이 올해 상반기 조성한 사모펀드에는 슈퍼리치 수십 명이 참여해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우주 기업 스페이스X에 투자하기도 했다. 스페이스X는 얼마 전 화성 탐사 우주선 스타십을 쏴올려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꿈처럼 보이지만, 결국 머스크를 믿고 투자한 것 아니겠느냐"며 "그만큼 다양한 투자처에 분산 투자한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유전자 치료제 개발 기업 알데브론 등 비상장 회사에 투자하기 위해 한국투자증권이 조성한 펀드에도 매년 수십억 원의 큰손 자금이 유입됐다. 특히 2021년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라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일반 리테일 자금을 유치할 수 있도록 하면서 슈퍼리치 비상장 미래 기업 투자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운용사와 증권사 자산관리(WM) 서비스 전담 조직 간 협력이 강화되면서 다양한 투자처가 쏟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딜 파트너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관련 인프라스트럭처가 잘 구성돼 발 빠르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냐는 것"이라며 "네트워킹이 좋고 상품 이해도가 빠른 조직이 딜을 따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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